2019년 교계 이슈, 예장 백석 총회장 장종현 목사

2019년 9월 2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 제42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2015년 예장 백석과 예장 대신이 합친 이후 4번째 총회다. 그 이후 잡음이 계속되었는데, 이번 총회를 통해 그 잡음을 수습하려 했다. 수습책으로 마련된 것이 장종현 목사를 총회장으로 추대한 일이다. 장 목사는 예전에도 백석 총회장을 지낸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장 목사는 "금년처럼 (교단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처음이다. 총회 정상화를 위해 모든 헌법과 규칙을 초월해서 사면, 복권 등의 전권, 부총회장을 더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 주면 총회장직을 수락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총대들은 이의 없이 박수로 그를 총회장에 추대했다.

전권을 위임받은 장 목사는 다음 날 오전, 교단에 적용할 새로운 사안 15가지를 발표했다. 그 중 일부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7년간 부총회장 선거는 없고, 대신 자신과 전 총회장들이 논의해 지명하겠다고 했다. 총회 임원 선거제도는 '영원히'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총회장이 총회 임원을 지명하게 된다.

장 목사는 헌법규칙 개·수정위원회 활동 역시 임원회에 일임했다. 헌법규칙 개·수정위원회는 예장대신과 교단 통합 후 단일한 헌법 발간을 논의하는 위원회였다. 총회 임원을 총회장이 지명하도록 했기 때문에, 장 목사는 사실상 교단 헌법까지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참석한 이들 중에는 "장로교의 대의정치를 포기한 것이냐", "교황으로 등극한 것이냐" 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장로교회에서 총회의 의미

위 내용은 백석대신 총회와 관련한 신문기사를 정리한 내용이다. 그냥 읽어도 뭔가 꺼림칙하다. 대중의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그런 정도의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회의 민주정치와 관련해 위 사건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장로교회에서 총회와 총회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이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장로교회에서 총회는 철저히 임시회다. 1년에 한 번 개회하고, 회의가 끝나면 파회(罷會)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총회는 기도로 개회하고 폐회하되 폐회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마친다. "교회가 나에게 위탁한 권한으로 지금 총회는 파(罷)함이 가한 줄로 알며, 이 총회와 같이 조직된 총회가 다시 아무 날 아무 곳에서 회집할 것을 선언합니다."

이 내용은 장로교회라면 고신, 대신, 백석대신, 통합, 합동, 합신 할 것 없이 모든 헌법에 수록된 내용이다.

위 조항은 그 자체로 특이하다. 총회를 마칠 때 총회장이 무슨 말을 하고 마쳐야 하는지를 헌법에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총회장은 자기 마음대로 마치면 안 되고, 총회 헌법에 기록된 이 구절을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폐회(閉會) 대신 파회(罷會)라는 특이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파회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박윤선 목사는 그의 유명한 책 『헌법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총회의 폐회는 파회(罷會)다. "파회"란 그 총회는 폐회되는 순간부터 없어진다는 것이다. 파회한 후 1년 동안은 지교회의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총회의 권위로써 관여하지 못한다. 총회는 해마다 새로 조직하여 모이는 회합이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왜 이런 해설이 있을까? 장로교회가 교권(敎權)을 경계해 온 결과다.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중세는 교권주의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했다. 교황(敎皇, the Pope)은 스스로 교회의 머리로 행세했다. 그 폐해가 얼마나 큰 지를 우리 선배들은 직접 경험했다.

이후 장로교회는 교권주의(hierarchy)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장로교회가 총회를 파회로 보는 것은 교회 안에 인간의 권위가 정착되는 것을 경계하고 교권이 교회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

장로교회에서 총회장의 의미

총회장(總會長)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장로교회는 총회장에게 권한을 최소화함으로써, 교권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총회장은 총회에 속한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장(長, President)이 아니라 회의를 위한 의장, 즉 사회자(Moderator)일 뿐이다.

장로교회의 어머니 격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총회장은 총회를 주재하는 자로서, 총회 회기 중에 매일 경건회 인도와 질서 유지, 총회를 대신한 결재를 한다.

총회장의 정확한 명칭은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 의장(Moderator)'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교회의 의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 교회의 머리요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총회장의 직무는 그를 총회장으로 선출한 그 총회가 파회한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장 백석대신 교단의 결정과 장로교 정치

위 내용에 근거해 볼 때, 예장 백석대신 교단의 결정에 대해 참석자 일부가 "장로교의 대의정치를 포기한 것이냐", "교황으로 등극한 것이냐"라고 비판한 것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예장 백석대신의 결정은 장로교 정치에 완전히 반하는 행위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총회장 제도

예장 백석대신 총회장의 사례를 통해, 장로교회에서 총회장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예장 백석대신을 비판적으로 보았지만, 다른 교단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장로교회에서 총회장은 총회 석상에서만 의미가 있다. 총회가 파회한 후에는 총회장이라는 것이 없다. 다음 총회가 열릴 때 총회장을 선출해야 다시 총회장이라는게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장로교회는 모두 총회가 있는 9월만 아니라 파회한 이후에도 여전히 총회장으로서의 여러 활동을 한다. 교단을 대표하기도 하고, 몇몇 권한을 행사하기도 한다. 교황이나 감독은 아니지만 일반 목사보다는 비중이 큰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교회 안에 슬금슬금 들어온 방식이다. 심지어 서로 총회장이 되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선거 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교황과 교권주의를 비판하며 탄생한 개신교회와 장로교회의 퇴행이다.

손재익 목사.
손재익 목사.

'왜 개신교에는 지도자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주제와 관련해 우리는 다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잘 모르는 분들 가운데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왜 개신교는 내세울 만한 지도자가 없는가? 천주교는 추기경, 불교는 조계종 총무스님 등이 있는데."

이런 내용을 들을 때, 잘 모르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개신교는 그 어떤 사람도 교계를 대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될 때 교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대표자가 없다고 본다. 이 정신이 한국교회에 뿌리 깊게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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