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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석 칼럼]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기독일보

입력 Sep 22, 2019 07:04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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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더럴웨이중앙장로교회 장홍석 목사
훼더럴웨이중앙장로교회 장홍석 목사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부르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323장(새찬송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라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마음이 울컥하는 것은 임직 받을 때 받았던 은혜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만났을 때의 벅찬 감격이 되살아 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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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정말 그랬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저는 온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길 것을 작정했습니다. 목사로 임직을 받을 때 그런 작정을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마자 그렇게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삶을 살 것인가를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목사 됨은, 하나님 앞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기를 원하는 성도로서의 고백이었습니다.

제가 한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했을 때, 저는 성경에 대해 깊이 알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목사가 어떤 직분이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목사가 되기를 원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잘 몰라서, 목사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제 모 교회에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나이 어린 직공들이 참 많았었는데, 그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기를 원했습니다. 야학도 하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입니다. 

'권위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책임으로 이해하지 않고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에게 주어진 권위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주어진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서 그것과 반하는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라는 이유로 대접만 받길 원한다면 그 사람은 그저 권위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은 교회를 다스리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고, 권사님들은 교회를 돌보기 전에 먼저 기도로 양무리의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섬김의 본이 없이 그저 권위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모두 권위주의자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위를 주장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죄인처럼 우릴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그런 십자가 은혜를 깨달았다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위해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 시대 교회 리더들을 보시면서 통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직분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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