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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 없는 수술? 심프슨 경의 신앙과 학문

기독일보

입력 Sep 12, 2019 09:59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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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 없는 수술은 어땠을까?

(Photo : )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만일 급성 충수염(일명 맹장염)으로 곧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마취제가 없어 그대로 수술대 위에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비명을 지르거나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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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이전만 해도 마취라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외과적 수술을 하려면 환자가 요동치지 않도록 의사는 사람을 소·돼지처럼 수술대 위에 단단히 잡아두어야만 했다. 마취가 없이 수술이 행해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19세기도 아닌 지금도 북한은 마취제 부족으로 인해 지방에서는 일부 마취제 사용 없이 수술을 한다는 언론 보도가 수년전 있었다. 물론 공산주체귀족들은 예외일 것이다. 서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마취는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여 고통을 없애준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수술 받은 환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장녀도 과거 겨우 5세가 되던 어느 해 작은 사고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딸아이는 수술실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수 시간 동안 아무런 두려움이나 고통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마취를 하면 환자는 설령 자신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잘라도 잘 모른다. 고통은 마취가 제거되었을 때에야 시작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의학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마취제는 심프슨 경(Sir James Young Simpson, 1811-1870)에 의해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은 누구인가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심프슨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배스게이트 지방에서 빵을 만드는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리한 심프슨은 14세 때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산과학, 産科學)을 배우고 1832년 졸업하였다. 잠시 시골에서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던 심프슨은 곧바로 병리학의 조수와 동시에 산과학의 강사가 되었고, 1846년에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에든버러 대학의 산과학 교수가 되었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었다고 전해지는 심프슨은 1843년, 오늘날 간호학과 산파학에 아주 중요한 의학 도구인 자궁소식자(子宮消息子, Uterus-Sonde)를 고안하였고 많은 논문을 쓴 의학자였다. 그가 1853년 고안한 산과겸자(産科鉗子, Obstetrical forceps)는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으며 말년에는 병원 환경이 환자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리고 환경 개선에 노력한 의사였다. 무엇보다 그는 산과 마취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47년 1월, 그는 처음으로 임산부에게 에테르마취를 하였고, 그 해 11월에는 역시 최초로 클로르포름마취를 시도하였다. 마취 문제로 종교적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가 성경을 가지고 반론을 편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마취제를 발견한 심프슨 경

성경을 믿는 심프슨 경은 당시 많은 외과 수술을 하면서 수술 중 환자가 받는 고통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던 중, 창세기 2장 21절, 22절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매우 희화적인 하와에 대한 이 창조의 이야기를 심프슨 경은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의사의 지식으로 볼 때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는 것은 매우 큰 수술이다. 그런데 그 수술을 받은 아담은 잠에서 깨어나 고통은 느끼지도 못한 듯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장 23절)고 탄성을 울렸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듯,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는 없을까?'

더욱이 환자가 수술 중 고통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수술시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심프슨 경은 위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마취제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18세기 여러 가지 기체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는 치과에서 이를 뺄 때 사용하는 이산화질소(NO)도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윌리엄 모튼(1819-1868)이라는 치과 의사는 1846년, 이산화질소 대신에 에테르라는 물질을 사용하였더니 아프지 않게 이를 뺄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물질은 곧 영국의 외과 의사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에테르는 불쾌한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심프슨은 '좀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물질이 없을까?'하고 찾기 시작했다.

1847년 11월의 어느 날, 심프슨 경은 그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키이스 박사, 던컨 박사와 함께 '클로로포름'이라는 무거운 액체를 시험해 보았다. 클로로포름은 이미 1831년 알려진 물질이었지만 오랫동안 아무도 그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심프슨과 그 동료들은 컵에 클로로포름을 붓고 그 증기를 조금씩 마셔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보통 때 느끼지 못했던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들의 눈은 빛났고, 매우 행복해 보였으며, 수다스러워졌고, 말끝마다 이 향긋한 향기를 칭찬하였다. 그 기체에는 약간의 단맛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이 기체를 마신 사람들은 바닥에 모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 실험을 통해 클로로포름이 안전한 마취제라는 확신을 갖게 된 심프슨은 에든버러 왕립 병원에서 이 물체를 실험하기로 결정한다.

1847년 11월 어느 날, 심프슨은 아일랜드에서 온 너 댓살 먹은 소년의 작은 수술에 드디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이 소년의 곪은 팔 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클로로포름을 사용한 것이다. 마취는 클로로포름을 약간 손수건에 묻혀 소년의 얼굴에 대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 마취제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잇따른 수술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거둔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프슨 경은 분만의 고통을 더는 데도 이 클로로포름을 사용하였다. 최초 환자는 그의 친구인 동료의사의 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성공은 무통분만법을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그는 수십 회 이 방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마취법의 성공적 활용은 1853년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여덟 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활용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이 마취법은 공인되었으며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심프슨 경의 믿음과 고백

지금은 클로로포름이 사람에게 독성(참고: 독성 없는 약은 없다)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더욱 발전된 마취제를 쓰고 있다. 이런 의학 발전에 있어 심프슨 경이야말로 마취제의 선구자였으며, 그 시작은 바로 성경이었다.

성경 말씀을 한낱 설화나 신화 또는 단순한 교훈서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른 한 진실한 외과 의사에 의해, 인류는 많은 고통스런 수술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보다 안전한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심프슨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마취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찾은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가 쓴 신앙에 관한 고백록에서 심프슨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대속(代贖) 제물이 되시며 나를 위해 징벌을 받고 십자가 위에 죽으신 예수님을 찾았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찾았고 부르짖었으며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심프슨은 다음의 성경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이사야서 53장 5-6절).

참으로 심프슨 경은 위대한 과학자이자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평택대 <과학과 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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