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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칼럼] 총각의 시절을 잊어라

기독일보

입력 Aug 26, 2019 07:14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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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뒤에는 자유분망하게 지냈던 총각의 시절을 잊는게 당연하다.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기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의 여자들에게 눈을 돌린다면 그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로서도 자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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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 안에 있는 죄 덩어리는 쉽게 씻겨지지 않기에 평생에 걸쳐서 부단히도 애를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죽어서야 풀 수 있었던 그 죄의 사슬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왜 십자가의 길에 동참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전하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은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총 동원해도 창조의 비밀은 풀어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성경의 말씀이 사실로 드러나는 증거들만이 계속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대위임명령에 동참하고자 하는 미래의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계속 부르시고 계신다. 거짓과 속임수만이 난무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과연 주님은 누구를 선택하시는 것일까?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인 권력이나 가문 혹은 지혜의 유무로 제자를 부르시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라. 오히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평범하며 세상에 내세울 것도 별로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약한 이들을 선택하셔서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자 하나님의 방법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이란 바로 십자가의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원죄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가진 모든 죄를 소멸시키며, 몸도 영혼도 치유 받을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고,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제자로 부름 받은 모든 이들이여, 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직도 주님 앞에 나온 것이 당신의 뜻이라고 말하겠는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도 당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아니다. 주님께서 친히 각 사람을 부르셨고, 택하셨으며, 직분을 주어서 믿음 안에서 서로를 돕고 교회를 세우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 각자는 충실한 종의 자세로서 최선을 다해서 주를 섬기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는 크리스천 삶의 처음과 끝은 반드시 십자가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크리스천들의 인생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십자가의 능력으로 가득 찬 증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하다가도, 찬송을 부르다가도 혹은 성경을 읽다가도 '십자가' 단어만 나와도 가슴에 메어지고 눈물이 흐르며, 회개와 감사가 터져 나와야 할 것이다. 당신이 제자로서 부름 받아 주의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그 십자가 때문에 그 죽음마저 감사와 찬양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를 믿는 크리스천들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자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많은 교회들과 크리스천 리더들은 이미 자신이 왕이 되어 버린지 오래 되지 않았던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굶주리고, 헐벗고, 매를 맞고, 집없이 떠돌아다닐지라도 하늘나라를 위하여 힘써 일하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요즘 교회는 우두머리의 자리에 위치하기를 좋아한다. 교회의 리더들은 어떠한가? 자신들이 높은 자리에라도 위치한 것처럼 훈계하기를 즐기며, 권위와 위엄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허다하다. 어떻게 하여 교회가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인가? 아직도 겉모습은 고상하지만 속마음은 세상과 벗하고 헤어지지 못하였단 말인가? 어찌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지 않고 십자가의 능력을 갖추지도 못한 이들이 리더의 자리에 올라 왔단 말인가?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고전 4:20)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고 당부한 것과 같은 말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말로만 풍성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이는 오늘날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청산유수처럼 신앙을 이야기하고 지식을 논하지만, 실제적인 하나님 말씀 아래서는 불신자보다도 못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피터정 선교사 (코칭한국 국제협회 대표) 피터정 선교사 (코칭한국 국제협회 대표)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헬라인들이 절대로 십자가의 사건을 믿을 수 없듯이 현실적인 모든 면에서 풍족하게 채워지는 지금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십자가의 도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변에 그렇게도 교만하고 형식적인 교인이 점차 많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혼동의 시대에 주님의 제자인 당신은 무엇을 붙잡고자 하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누구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가? 지금의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앞장 설 수 있다고 믿는가? 자신이 없다면 지금 다시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라. 다시 말해서, 제발 총각 딱지를 떼고 즉 세상적인 우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라는 것이다. 그 십자가의 능력은 세상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먼저 당신을 선택하신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가 그에게 목숨 걸고 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그 십자가의 능력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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