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문화 평론에서는 배우 지성(차요한 역) 주연 드라마 <의사 요한>을 연속으로 다룹니다. <의사 요한>은 '안락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생명의 문제를 중시하는 기독교계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지성 외에도 이세영(강시영), 이규형(손석기), 황희(이유준), 정민아(강미래), 권화운(허준), 오현중(김원희), 김혜은(민태경), 엄효섭(강이문) 등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안락사 문제를 중심서사로 삼는 드라마 <의사 요한>.
안락사 문제를 중심서사로 삼는 드라마 <의사 요한>.

안락사와 인권: 인권보호의 한 방편으로 부각되는 안락사

<의사 요한>은 안락사를 옹호하는 의사 차요한(지성 분)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의 원작은 일본의 의사 겸 작가인 구사카베 요의 소설 <신의 손>이며, 소설 내용 가운데 안락사와 관련된 부분을 특화해 드라마의 서사를 구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작의 작가가 현직 의사인 만큼 탄탄한 의학적 배경지식이 돋보이며, 의료계 현안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큰 장점이다.

반면 일본 대중소설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특성이라 볼 수 있는 요소들은 드라마의 매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을 받는다.

극단적이고 단면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 간의 대립, 그리고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능력치 설정 등이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방영 내내 준수한 수준의 시청률(10% 내외)을 유지한 것을 보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시청자들에게 더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차요한은 대단한 실력을 가진 의사이지만, 극한 고통에 처한 환자에게 쉽게 감정이입하는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연명치료가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되는 말기암 환자를 고통없이 죽도록 해주었으며, 이로 인해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교도소에 다녀온다.

드라마 전체의 어조는 차요한의 개인사(그 자신도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입장에 처해 있음)와 인간적 고뇌, 그리고 환자에 대한 애정을 번갈아 비춰가며 안락사의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옹호하는 입장에 선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원작 저자가 일본 의사이며,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입장에서 안락사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일본 사회는 한국과 비교해볼 때 기독교적 가치나 윤리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의사 요한>의 원작 <신의 손> 역시 기독교적 가치와는 거의 무관하게 순수하게 세속적 입장에서 안락사를 바라본다.

물론 원저자 구사카베 요가 안락사 논쟁에서 안락사 찬성측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본에서 안락사를 찬성하는 의사들이나 시민단체가 다분히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 문제를 다루려 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진정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신음하며 끊임없이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환자들을 동정하며, 그들에게 안락사에 대한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믿는 편이다.

반면 한국은 짧은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교세와 사회적 영향력이 다른 전통 종교들에 못지않은 만큼, 아직까지 의사들이나 관계자들이 안락사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 기독교계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 의학계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병원과 기관들을 바탕삼아 성장해 온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에, 안락사 문제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온 것이 사실이다.

<의사 요한>의 주인공 차요한(지성 분). 환자의 안락사를 주도하여 촉망받는 천재 의사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의사 요한>의 주인공 차요한(지성 분). 환자의 안락사를 주도하여 촉망받는 천재 의사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안락사와 신앙: 안락사 옹호론의 대두와 기독교계의 과제

순수하게 세속적인 입장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 생명의 원초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우려한다. 반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현세적인 생명의 존엄성뿐 아니라 내세에서의 영생에 관한 신앙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

육신의 생명이 남아있음에도,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로 자살에 해당하며, 이는 영생을 얻는 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신앙의 다양한 내용들 가운데 특별히 내세와 영생이라는 성서적 테제는 오늘날 교회 안팎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한다.

감각적으로 체험되는 실존에 모든 가치의 근거를 두는 실존철학적 시대정신 때문에, 그리고 과학주의와 유물론의 영향 때문에, 내세와 영생에 관한 언명들은 전반적으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오직 교회들만이, 그것도 성서적 가르침에 입각해 정통주의 신앙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가진 교회들만이 내세와 영생에 대한 신앙을 변호하려 힘쓰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계 내부에서조차 '몸으로 체험할 수 없는' 영생과 내세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약화되고 있는 까닭에 안락사와 자살에 대한 교회들의 견해 역시 보수적이고 완고한 입장에서 유화적인 태도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사 요한>은 한국 사회와 기독교계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는 이런 태세 전환의 분위기를 여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기독교적 인간관이 우리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당시에는 <의사 요한>과 같이 안락사를 옹호하는 서사가 대중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간에, 환자들의 편안한 말년을 위해서는 안락사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정서가 일반 대중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 비율. 환자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반면, 의사 및 법조인들은 적극적 안락사에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 비율. 환자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반면, 의사 및 법조인들은 적극적 안락사에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안락사 옹호론이 대중에게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사회의 대세로 부각되는 견해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세란 대중의 집단적 욕망을 표현하며, 집단적 욕망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심(票心)을 좌우하는 요소로서 항시 정치적 이해의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안락사라는 용어에 대한 표현의 변화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적극적 안락사(의사가 약물주입) 혹은 의사조력 자살(환자가 약물주입)이라는 말로 표현되던 행위가, 이제는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친숙한 표현으로 통용되고 있다.

안락사나 의사조력 자살이라는 용어는 의도적인 자기 살해라는 의미를 명시하는 반면,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용어는 자기살해라는 의미를 완벽하게 감추고 있다.

<의사 요한> 서사 역시 적극적 안락사라는 행위를 다분히 인도주의적인 행위로, 고결한 행위로 포장하려는 대중적·정치적 동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동향은 작년(2018년)에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진입했고, 향후 7년 내에 초고령사회(20% 이상)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 5명 가운데 1명이 삶의 마지막에 감당할지 모를 병마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현실에서, 적극적 안락사의 법제화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의사 요한>은 단순히 흥미를 충족시키는 서사를 제공하는데 그치는 드라마가 아니라, 안락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가늠해 보고 향후 안락사의 법제화 가능성을 미리 타진해보는 하나의 지침 역할을 하는 콘텐츠로 볼 수 있다.

<의사 요한> 서사에 대한 대중의 반응으로 미루어볼 때, 한국교회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안락사가 일상화되는 험난한 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 일찌감치 안락사와 자살에 반대하는 기독교적 입장을 공고히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신학적·윤리적 이론화 및 '신앙 있는 죽음'을 위한 실천방안 마련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계속>

안락사 옹호론의 강세를 반영하는 드라마 <의사 요한>.
안락사 옹호론의 강세를 반영하는 드라마 <의사 요한>.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