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유태인, 일본에서 복음 받아들여
1898년, 시편 일부 번역해 <시편촬요> 출간
'하느님, 하나님' 호칭 논란, 번역하며 정리도
첫 번역 40년 후 1938년, 개역 구약성경 번역

심포지엄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심포지엄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구약성경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알렉산더 A. 피터스 목사(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 한국명 피득(彼得)) 기념 심포지엄이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에서 한국교회총연합 주최로 개최됐다.

1부 기념식에서 인사한 한교총 기념사업회 위원장 안성삼 목사(국제신대 총장)는 "어찌된 영문인지, 피터스 목사님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며 "이번 심포지엄은 우리가 매일 읽으면서 은혜받고 있는 한글 구약성경 번역의 중심축이었던 피터스 목사님을 교계에 알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려는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피터스 목사
▲피터스 목사가 한국어를 배운 뒤 3년만에 번역한 시편촬요(1898)는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이다(맨 왼쪽). 시편촬요에 수록된 시편 23편(가운데). 찬송가 383장과 75장 가사도 피터스 목사가 작사했다(맨 오른쪽).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격려사를 전한 예장 통합 총회장 림형석 목사는 "피터스 목사님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주여 우리 무리를' 같은 즐겨 부르는 찬송시 여러 곡의 작사자"라며 "유태계로서 히브리어 원문으로 한글 구약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요 은혜"라고 말했다.

영상축사한 예장 고신 총회장 김성복 목사는 "피터스 목사님은 히브리어에 뛰어난 분이셨다"며 "의미 있는 심포지엄이 되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분을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기하성 총회장 이영훈 목사도 "피터스 선교사님은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꼭 기억해야 할 분"이라며 "앞으로도 기념사업이 잘 진행되어 신앙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전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준서 알렉산더 피터스
▲박준서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2부 심포지엄에서 '구약성경 최초의 한국어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라는 제목으로 발제한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명예교수(연세대 구약학)는 "피터스 목사는 1898년 시편 일부를 한글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출간,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오늘날 우크라이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피터스 목사는 어학에 처부적 재능을 타고났고,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를 배워 히브리어 기도문과 시편을 암송하며 자라나는 등 히브리어에 능통했다"며 "그는 유대인 차별과 박해가 심했던 19세기 제정 러시아를 떠나 일본까지 오게 됐고, 하나님의 섭리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1895년 5월, 크리스천이 된 24세 청년 피터스는 당시 미국성서공회 일본 책임자였던 헨리 루미스 목사의 권고에 따라, 성경을 팔며 전도하는 권서인(勸書人)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며 "그는 전국을 다니며 '쪽복음'을 팔면서 한국말을 익히기 시작했다. 특출한 어학 능력을 타고난 그는 한국에 온지 불과 2년만에 한국어를 완전히 통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약성경 최초의 한국어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1871~195)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구약성경 최초의 한국어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1871~195)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박준서 교수는 "당시 한국에는 한글로 번역된 구약성경이 아직 없었는데, 그는 권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애송하던 시편을 한글로 번역해 예순 두 편을 한글로 번역하고 이들을 모아 <시편촬요>를 출간했다"며 "한국에 온지 2년만에 한국어 운율에 맞는 유려한 우리말로 시편을 번역했다는 것은 그의 천재적인 어학 재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당시 구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할 사람이 꼭 필요한 때에, 하나님은 최적의 인물을 한국 땅으로 보내주신 것"이라며 "신약성경 번역자 존 로스(John Ross) 목사님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구약 성경 번역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후 "피터스 청년은 시편을 번역하는 동시에, 이들을 찬송가로 부를 수 있도록 찬송가 가사로 작사했다. 그가 작사한 17편의 찬송가 가사는 <시편촬요>와 같은 해 출간된 찬송가집 <찬셩시>에 수록돼 있다"며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75장(통 47)과 383장(통 433)은 그가 번역한 시편 67편과 121편을 찬송가 가사로 작사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후 피터스 청년은 미국으로 가서 맥코믹 신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04년 한국에 돌아온 피터스 목사는 성경번역위원회 위원으로서 구약성경 번역 작업에 동참, 1911년 최초로 구약 전체가 한글로 번역됐다"며 "이후 한글성경을 가다듬고 수정하는 개정과 개역 작업이 시작됐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던 중, 1926년 피터스 목사가 '평생 위원'으로 개역 작업에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게 됐다"고 밝혔다.

박준서 교수는 "마침내 1938년 개역 구약성경이 출간됐다. 피터스 목사는 1898년 역사상 최초로 구약성경의 한글 번역 사역을 시작했고, 40년이 지난 1938년 개역 구약성경 번역을 완결시킴으로써 구약성경 한글 번역의 성업(聖業)을 마무리지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박 교수는 "피터스 목사는 한국교회 안에서 '하느님, 하나님' 호칭 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을 때 개역 구약성경에 '하나님'이라고 호칭하며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며 "오늘날 성도들이 사용하고 있는 구약성경은 1938년 개역 구약성경을 표준 맞춤법에 따라 고치고, 고어 문체 등을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41년 피터스 목사는 70세가 되어 은퇴했다. 그는 46년간 헌신봉사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서, LA 근교 패서디나 시에서 말년을 보내다 1958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며 "피터스 목사가 한국을 떠난 이후, 유감스럽게도 그는 한국교회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의 공적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미국에서 말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묘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미국 LA 근교 패서디나(Pasadena) 소재 마운틴 뷰 묘지에 있는 피터스 목사의 묘소. 잡초와 잔디로 뒤덮힌 묘소에는 작은 묘비 조차 없다.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마지막으로 박준서 교수는 기념사업회의 추진 사업으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기념비 건립 △한국을 떠나기 전 10년간 전했던 220여편의 설교집 출간 △<시편촬요>와 <찬셩시> 영인본 제작 △피터스 목사 전기 집필 및 출간 △피터스 목사 관련 자료 수집 △피터스 목사 사료실 및 전시실 △피터스 목사 기념 성서연구원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피터스 목사를 기념하는 일은 신앙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교회사적·선교적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 있다"며 "뜻깊은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후 주강식 목사(증산로교회)가 '한글 성경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을 발제했고, 안성삼 목사가 논찬을 전했다.

본지는 앞선 2017년 박준서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의 공적을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