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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칼럼]존재감과 무게감은 신앙인의 주소입니다.

기독일보

입력 Aug 15, 2019 06:59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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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사람의 삶을 성장과 쇠퇴로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현상 유지는 묘기입니다. 자전거를 타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전거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은 묘기입니다. 자전거는 앞으로 가든지 좌우로 넘어지든지 해야 정상입니다. 성장은 복리로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쇠퇴도 복리일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의 복리는 어제보다 1%만 성장하면, 1년 뒤에는 37배 성장하고. 10년 뒤에는 6,000조  성장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작은 성장의 지속이 무섭더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남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보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현실은 달콤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신뢰하면 성장합니다. 반면에 불신은 멸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행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며,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합니다. 불신 때문에 하나님이 자존심을 상해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현실 붙들거나 자신을 의지하면 바로 내 자신의 존재감과 무게감이 떨어짐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목적은 고난 회피가 아니라. 언약 백성을 만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애굽과 광야를 비교해 봅시다. 애굽도 고난이 있고, 광야도 고난은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먹을 것은 보장이 됩니다. 비록 개밥이지만? 그런데 광야는 고난과 동시에 작은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을 붙드는 사람들의 아우성의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의 유익은 연단의 장소요 낮춤의 장소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광야는 일종의 여행입니다. 여행의 목적은? 기존의 살던 곳에 대한 낯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유익을 주고, 광야는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줍니다. 

애급에 총리대신이 된 요셉이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 나를 가족을 구원시키려고 먼저 보내셨다."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해석을 해 줍니다. 요셉은 광야를 통해서 강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불평의 언어를 감사의 언어로 바꾸어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너희 말이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 뜻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고로 믿음을 품고 말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좋은 것을 보고 좋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존재감과 무게감의 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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