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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칼럼]감동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에 있습니다.

기독일보

입력 Aug 08, 2019 07:22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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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우리의 신앙은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이 땅에 남겨둔 이유는 무엇인가? 천국 백성에 걸 맞는 수준의 훈련을 위해서 입니다. 훈련이기에 지금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훈련을 거쳐서 훌륭해집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미숙합니다. 이유는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훈련의 집대성이 군대라 할 수 있습니다. 위로 받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는 욕을 먹어도, 힘든 훈련 받아도 누구도 위로하지를 않습니다. 거기서 인내의 절정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듯이 위로 없는 인내는 훈련을 통해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시킵니다. 통제권 때문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통제권이 넘어갑니다. 결과가 방탕입니다. 방탕 이야기를 하면 탕자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탕자의 교훈은 부도덕 문제가 아니라 허비와 낭비와 탕진의 문제입니다. 탕자는 허랑방탕하여 다 없애 버렸다고 했습니다. 탕자는 허비한 자입니다. 맡겨진 사명을 허비한 자입니다. 이렇듯 술 취함은 우리를 방탕으로 이끕니다. 므나의 비유를 봐도 열 므나 남긴 자에게 열 고을 권세를 줍니다. 므나를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권세를 줍니다. 천국에서 누릴 실력과 가치 이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훈련과 사역으로 사는 길은 무엇인가? 감동을 주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잡혔던 미군 포로들은 굶주렸습니다. 독일군이 빵을 먹을 때에, 굶주림으로 모두 쳐다보았습니다. 독일군이 장난기로 큰 빵 한 덩이를 포로들에게 던졌습니다. 서로 싸우고, 갈등하기를 바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빵을 집어 들고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이걸로 우리 성만찬을 거행합시다." 그들은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빵을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하나 됨을 누렸습니다. 감격이 있었고. 영광이 임했습니다. 

반대로 독일군에게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재빠른 행동으로 어떤 한 사람이 혼자 빵을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잠시의 기쁨이었지만. 나눠 먹는 성만찬은 감동의 선택이었습니다. 언제나 감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광과 위엄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메시지가 용서입니다. 어떤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복수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용서에는 눈물과 감동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감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이 기뻐하시는 감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삶이요. 잘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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