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샘터교회 진웅희 목사를 교회탐방 인터뷰 ‘애틀랜타 교회를 가다’ 코너를 통해 만났다. 은혜로운 간증과 애틀랜타 땅에 두신 샘터교회의 비전을 나누며 2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후 그는 꾸준히 성장하던 사역을 내려놓고 한국에서의 부르심을 받아 떠났고, 몇년 뒤 돌아와 조용히 뒤에서 돕던 중 후임 목사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날 수 밖에 없던 교회를 다시 맡았다. 지난 10년의 시간은 교회도 진웅희 목사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위로 아래로 내달리며 때론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손잡이를 꼭 잡을 수 밖에 없는 조금은 위험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출발선에 선 듯한 교회와 진웅희 목사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운행하는 롤러 코스터를 다시 한번 타보려고 한다.

교회탐방 인터뷰 ‘시즌 2’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는 별안간 처음 목회했던 그 시간을 끄집어 냈다. 바야흐로 1997년, 꽃다운 전도사 시절이야기다.

“군대 제대하고 박사과정을 하다 내려놓고 탈봇신학교로 유학왔다,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10명 성도 가운데 청년이 4명인 교회에서 열심히 했어요. 4개월 만에 청년이 40명까지 불어났어요. 클럽 죽돌이가 변화되니 친구들이 충격 받고 교회 따라 나왔다 은혜받고, 큰 교회로 새벽기도회 데리고 다니면서 신나게 사역했죠. 어느 순간 ‘저 처럼’ 목회를 못하는 담임 목사님이 우습게 보이더라구요. 아이들도 불평하기 시작했죠. 우리가 더 기도하자, 더 돕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더 불평하고 목사님께 조언도 하고…그런데 목사님께서 얼마나 겸손하신지 ‘알았어 진 전도사, 내가 그렇게 할게’ 하시면서 받아들이시곤 하셨죠. 결국 6개월 만에 청년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할 수 있는 곳으로 나가겠다며 담임 목사님 마음을 찢어 놓고 나왔어요. 그리고 청년 중심의 ‘멋진 교회’로 입성했죠.”

그곳에서 청년 목회를 하면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날 줄 알았다. 결과는 ‘폭망’. 이전과 똑같이 부흥할 것을 기대했지만 예상 밖의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통해 은혜받고 변화된 아이들이 원수가 되어 자신과 싸우고, 교회를 나가고, 담임 목사와 사이도 틀어지면서 비난 받는 지옥같은 6개월을 보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겨나다시피 나오면서 들은 말이 ‘어디서 좀 더 배우고 오세요’. 1년 전 자신의 모습은 영광스럽고 능력있고 참신한 사역자였는데, 1년만에 별안간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 가운데 다음 1년은 사역을 하지 못하고, 미국 대형교회를 출석하며 폐인처럼 살다 어느날 깊은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손에 깨져야 그리스도의 은혜가 저에게도 나올 터인데 담임 목사가 바로 하나님의 손이라는 것이었죠. 깊이 회개하고 감사하며 이번에는 어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맡기시던 간에 철저히 담임 목사님께 순종하겠다고 결단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역하게 된 교회에서 정말 결심한 대로 했어요. 청년부 사역자로 갔는데 찬양, 행정뿐 아니라 크고 작은 일들을 계속 더해지는데 불평 안하고 순종했죠. 야곱이 라반에게 순종한 것처럼, 5년을 군말 없이 모시기 힘든 목사님을 묵묵히 모셨더니 교우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물질적인 축복도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한가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도 ‘부교역자의 축복’을 늘 주세요. 감사할 뿐이죠.”

건강 문제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애틀랜타에 개척을 시작하고, 불신자와 청년 중심의 교회로 쉽지만 깊이 있는 말씀공부를 통해 성장을 경험했다. 한창 재밌게 목회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라고 하셨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한국에서의 목회다. 큰 교회에서 부교역자들과 좋은 팀워크를 갖고 설교자로도 인정 받으며 3년을 섬기며, 전도가 일어나고 교회가 부흥하는 기쁨을 맛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시기였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으로 사모와 자녀들 모두 힘들어 했고, 정치적인 이유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을 선택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목회자로서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은사대로 교회를 섬기고 싶었고 그렇게 하던 중, 샘터교회를 담임하던 목사가 떠나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다시 한번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샘터교회
(Photo : 기독일보) 101 성경공부로 구도자를 인도하고 전도자를 양육하는데 남은 삶을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샘터교회 진웅희 목사

“솔직히 모른척 하고 싶었는데… 기도하던 중 ‘네가 시작했으니 네가 닫아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럼 한달 만 해보겠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제가 닫겠습니다’라고 순종하니 이상하게 사역자들이 모여요. 사례를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여전히 교회는 힘든데 청년일 때 출석하다 결혼하고 뉴욕으로 떠난 분이 갑자기 내려와 찬양인도로 섬겨주시고, 남편 집사님은 유스를 맡아주셨어요. 떠난 만큼 한 명 두 명 늘어나는게 신기하죠. 중간에 심장문제로 죽을 고비를 다시 한번 넘기고 나니 성도들이 오히려 설교만 하라고 등 떠밀어서 편하게 목회하고 있어요(웃음). 교회가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존폐위기까지 갔는데 교인들이 먼저 기도를 시작했고 은혜를 받고 힘을 내니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진웅희 목사는 회춘하는 독수리 이야기를 꺼냈다. 70년을 사는 독수리가 40살 정도 되면 늙어서 더 날 힘도 없고 깃털은 무겁고 부리와 발톱이 구부러져 사냥도 할 수 없는 죽음의 위기가 닥친다. 이때 독수리는 절벽에 둥지를 짓고 앉아 부리를 바위에 쳐 뽑아버리고 새로 나길 기다렸다, 발톱과 깃털을 모두 뽑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독수리가 거듭날 때 특별한 능력을 받는게 아니라 기본을 새롭게 하듯, 교회의 기본인 말씀에 은혜 받고 기도로 성령충만함을 받아 가려고 할 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독수리 날개침’ 같은 힘을 주시듯 조금씩이지만 힘을 내는 샘터교회를 그려볼 수 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모양이 아니라 주님께서 샘터교회를 향한 비전이 무엇인지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종의 삶을 살고자 서로를 격려하는 ‘동지애’가 진하게 느껴졌다.

인터뷰의 말미는 역시 진웅희 목사의 은사이자 샘터교회의 자랑인 ‘101 성경공부’로 끝을 맺었다.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은 ‘101’ 성경공부의 주 대상은 예수는 믿고 싶은데 뭘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몰라서 믿지 못하는 이들이다. 보통 친구초청을 통해 교회에 발을 디뎌도 교회 안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다 아는 것 같은데 혼자 질문하는 것이 뻘쭘해서 혹은 이해하기가 어려워 쉬이 신앙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평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설명한다.

4주 코스를 마치면 복음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을 통해 구원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계속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제자도 훈련, 성경심화연구, 사역자 훈련, 전도자 훈련 등을 받을 수 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대위임령’은 비단 목사들만의 사명이 아니기에 평신도들도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원한다면 101을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101’에 헌신된 교회가 되자는 것이 모토에요. 죄, 대속, 믿음, 의에 대해 쉬운 언어로 깊이 있게 가르치며, 신학적이지만 논리적입니다. 구도자들뿐 아니라 이미 신앙을 가진 분들도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세상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정리된다고들 합니다. 작은 꿈이 있다면 교회와 교회의 경계를 넘어, 순수하게 애틀랜타를 구원하기 위한 101 운동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물론 교사가 되고 싶은 이들도 아무 조건 없이 훈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와 샘터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자녀들에게 갑절의 영성을 물려주는 교회가 되고자 기도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남침례교회(SBC) 소속 샘터교회는 3665 Burnette Rd. Suwanee GA 30024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일 오전 11시에 모든 가족이 함께 하는 예배를 드린다. 문의 (678) 710-3752, samtermission@gmail.com. 더 자세한 소식은 홈페이지(www.samtermission.com) 혹은 페이스북('아틀란타 샘터교회' 검색)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