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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친구 되기 위해 살아갈 때, 가정도 회복될 것

기독일보

입력 Jul 31, 2019 10:2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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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승의 러브레터] 영적 성장 단계: 청소년기

ⓒPexels

ⓒPexels (포토 : )

1. 지난 '사랑의 편지'에서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도 직접 모태에서부터 시작하셨음을 인지하고 나누었습니다.

성경은 어떤 성장이 바른 성장인가를 예수님의 성장을 통해, ①키가 자라고 ②지혜가 자라고 ③하나님에게 사랑스럽고 ④사람에게 사랑스럽더라는 성장 과정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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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성장은 육체적 성장만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지혜가 성장하며,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는 당연히 사람에게도 사랑받게 된다는 것을 통해, 믿음의 상태를 점검할 기준도 깨닫게 됩니다.

이어지는 내용이므로 지난 주 편지를 잠시 언급하자면, 우리는 태아의 시기를 거칩니다. 이 시기는 전적으로 인내하고 믿어주는 시간입니다. 그의 안에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내 주장이 아니라, 수용하고 순종하는 마음 없이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고 인내함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 안에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아동기를 거칩니다. 이 시기 중요한 것은 놀 줄 아는 것입니다. 규칙과 원칙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더불어 놀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이 소중함을 놓쳤습니다. 함께 노는 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이들은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고 금방 노는 반면, 어른이 될수록 끼리끼리가 되고 은밀하게 놀려 듭니다. 이것처럼 자기 스스로를 망치는 길은 없습니다. 어른이 될수록 너무 바빠 함께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2. 오늘은 그 다음 시기인 청소년기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청소년 시기는 드디어 '친구'가 중요해지는 시기입니다.

어느덧 청소년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변화합니다. 그토록 엄마 아빠 말을 잘 따르던 아이들이, 친구가 더 좋아집니다. 정말 친구 따라 강남 갑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가족의 터울에서 벗어나 친구의 관계로', 친구가 된다는 것은 '평등'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평등의 관계를 요구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그분은 사람들과 같이 되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에서 사람과 같아지심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따라서 이것은 영적인 공동체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나이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거나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도 나이를 내세우며 청년들에게 말합니다. "아직 어리니까 모르지."

더 연세 있으신 분들은 그런 장년들을 향해 말합니다. "아직 어리니까 몰라. 살아봐."

어리니까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습관속에는, 상대를 나이로 평가절하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쩌면 젋은 나이에 십자가를 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그 누가 예수님 보고 "니가 살아봐", "아직 어려서 그래"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 시절 어린아이를 그토록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곳이라고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또 외모로나 성적으로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성적으로 서로를 차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남자는 적어도 이래야지.", "여자라면!"

인종차별도 없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흑인노예들이 백인들을 마차로 데리고 와서 백인들만 예배드리고, 흑인들은 뒤에서 기다렸습니다. 이제 그런 세상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흑인교회나 백인교회 다문화교회, 한인교회, 청년교회, 노년교회 같은 특별한 교회들이 있으면 안됩니다. 그런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오히려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끼리끼리와 따로, 차별이 있는 곳이라는 반증입니다.

세상에서의 경험은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종된 섬김의 요소, 평등해지기 위한 요소이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도 너무나 흔하게 이런 말들을 합니다. "너는 뭘 안해봐서 몰라.", "너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몰라."

농담으로 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아마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똑같이 '농담 반 진담 반' 던지겠지요.

물론 아이들이 실제로 모를 수도 있습니다.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장 약한 자에게 맞추어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가 되기 위함입니다.

3. 이것은 영적인 공동체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니, 자신의 영적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단계를 거친 사람은 압니다. "어 우리 가족이 아닌데, 난 왜 가족한테 못할 이야기를 이 친구한테 하지?", "우리 혈통이 아닌데 왜 눈물이 나지? 왜 더 사랑하게 되지?", "왜 이렇게 좋지? 그냥 같이 있어도?"

친구가 된다는 것의 위대함입니다. 혈연 공동체를 벗어나 누군가 전혀 상관없는 제3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니가 더 중요하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행복은 타인에게서부터 온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사춘기의 아이들이 친구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니, 부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왜 안 그럴까?

친구를 위해 목숨 거는 단계, 눈물 흘리는 단계, 그래서 관계에 민감한 시기. 그때가 청소년기입니다.

4. 따라서 우리 역시 점검하여 봅시다. "여러분은 교회의 지체를 정말 친구, 가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등해지기 위해 낮아지고 있습니까?

필요할 때만, 아니 비즈니스 용어처럼 교회 식구나 가족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모임 때는 혈연 공동체의 시간과 관계가 늘 우선순위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혈연 공동체만 가지고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늘 자기 가족만 중요한 이기적인 사회로 만들어갈 뿐입니다.

정치인들과 기업가들, 사회와 교계 리더십들은 가장 훌륭한 교육적 수준으로 성장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결국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적 부족? 외형적 부족? 결코 아닙니다. 대부분이 자기 혈연관계가 우선시되어, 자신의 '사명'을 뒷전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삶이 자기 가족을 욕먹이는 길임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고 비판해 왔습니다.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세습 교회들을 비판하기는 잘 하면서, 정작 자기 삶의 궤적도 혈연 중심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음을 보지는 못합니다.

내 자식을 누군가의 친구가 되게 하기 위해 내려놓게 할 용기란 보이지 않습니다.

5.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등의 관계를 구현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내려놓음, 낮아짐이 없이는 구현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구현될 수 없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친구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이곳은 혈연 공동체가 아니구나. 친구가 되기 위해 혈연이 흩어질 줄 아는 공동체이구나.'

6.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럼 가족이 깨지는 것 아니냐고, 하나님은 그걸 바라시는 것이냐고.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깨진 가족을 완성시키고 회복시키시기 바랍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때, 불만 가득한 형이 아버지에게 따집니다. "대체 왜 저렇게 잘해주냐고. 나는 뭐냐고."

그때 아버지의 대답이 이렇지 않습니까. "아들. 내 건 다 니거야. 그런데 니 동생은 잃었다가 얻은거야. 기억해야 해. 그러니까 기쁜게 당연하지."

깨어진 가족. 흩어진 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늘 불만도 가득한 것입니다.

뭔가 가족 중심으로 산다고는 하는데 불만만 가득하고 기쁨 없이 투덜거림. 그런데 왜 맨날 나만 희생하느냐고. 생각하는 큰 아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원래 가정이 깨어졌었던 거야. 그런데 둘째 와서 우리 가족 회복되었잖아."

7. 교회에 나눔씨앗이 있습니다.

매번 세번째 주일을 포도나무 주일로 정하고, 그 날 모든 헌금을 어려운 이웃과 기관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그 모인 봉헌물은 또 나눔씨앗팀이 구별되어 관리하고 시행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년째 해가 되면 모든 봉헌물을 레위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었던 정신을, 이 시대에 구현하고자 시행한 것입니다.

교회가 작고 지하라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장애 있는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한 달란트 된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시행했습니다. 교회 형편이 외부적으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매달 약 120-150만원씩 지출된다는데(저는 재정을 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릅니다), 이 금액이면 교회의 내부적 여러 문제를 해결할 금액입니다. 어려운 기관들에게 매달 10만원씩,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10만원씩 나누고 있습니다.

8. 교회는 그로 인해 재정이 팍팍해졌습니다. 교회에 결혼한 부부가 생겨 아이가 생겼는데, 아이가 함께 예배드릴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모실을 저그맣게 만들어주자 생각했습니다. 살짝 손대고 방 만드는데 200만원 예산이 든답니다.

200만원으로 이 방을 만들기 위해, 교인총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한 뜻이 되기 위함입니다.

9. 교회에서는 달꿈예술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를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세운 곳인데다, 기독교 정신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어 기관이나 정부 후원을 받기 어려운 상태인지라, 교회 나눔씨앗이 후원하여 주었습니다. 매달 20만원씩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을 줄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매달 20만원씩 후원하던 것을 이번달부터 10만원으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모두 공평해지기 위함입니다.

달꿈예술학교로 들어오는 후원금이 10만원으로 줄어들어 그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로 인해 평등한 관계가 성립되고 친구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교회와 학교가 사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10.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꺼이 그를 위해 살아갈 때, 오히려 내 가족이 회복되어갈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오히려 격려하며, 고아와 과부를 친구로 친구를 가족으로 대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의 불완전한 가족공동체도 회복될 것입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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