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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신비(上)

기독일보

입력 Jul 17, 2019 09:36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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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서론

바울은 로마서 11:25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신비'로 번역된 헬라어는 '미스테리온'이다. 신약성경에서 27번 사용된 이 단어를 우리말 성경은 '비밀'(25회), '신비'(2회)라고 번역하고 있다. '미스테리온'은 하나님이 드러내실 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섭리를 뜻한다. 이 '신비'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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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신비'의 내용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주는 내용이다. 그것은 천주교회에서 강조하는 성만찬 제도나 개별화 혹은 내면화된 신비주의 영성에서의 신비와는 구별된다. 바울이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큰 구원역사와 관련된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나님의 신비는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I. 첫 번째 신비: '구원역사의 중심인 이스라엘'

첫 번째 신비는 아브라함의 부름 이후 시작된 이스라엘(가나안)의 중심성은 한 번도 중단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성경은 구심(중심)과 원심(확장)이라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을 위하여 에덴동산이라는 중심점을 마련해 주셨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중심인 에덴으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그런 인간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음으로 대안적 중심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뜻을 어긴 인간의 저항이었고, 그 결과 인간은 다시 심판을 받아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결국 인간은 자신들을 위해 자력으로 만들었던 중심을 상실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우르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불러내셨다. 그렇게 하여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중심지가 되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을 위한 중심지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역사의 새로운 중심지라는 의미가 더 우선적이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가나안 땅은 실제로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당시 세계를 의미하는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서로 만나는 지상 가교역할을 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란은 아시아의 중심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에 비하면 아브라함이 부름 받아 도착한 가나안은 늘 물 부족에 시달려야만 했던 변두리 지역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만을 비교하면 그런 차이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세계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이집트가 자리하고 있었고, 또한 알렉산더 이후 세계역사를 지배했던 유럽이 위치하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이들 세 대륙이 교차하는 지상가교 역할의 중심지였다. 에스겔은 그런 이스라엘 땅을 '세상 중앙'(겔 38:12)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전개되었던 이스라엘은 곧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점이 된 것이다.

신약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 섭리 역사의 중심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점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주신 감람산 강화에 잘 드러나 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에게 세 때를 강조하셨다. 곧 징벌의 날과 이방인의 때, 그리고 재림의 날이 그것이다. 그것은 신약시대 이후 오늘을 포함하여 마지막 종말의 날까지를 제시하신 것으로 당시에는 이들 세 때 모두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었다.

이들 세 때의 공통점은 모두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역사라는 점이다. '징벌의 날'은 AD 70년에 있었던 로마의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된다. "그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고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눅 21:24a)가 그것에 해당된다. 그때 이후로 '이방인의 때'가 이어지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b)와 관련된다. 예루살렘에 대한 이방인의 지배가 끝나게 되는 것은 곧 '이방인의 때'가 종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이방인의 때'가 지속되는 동안 뒤로 밀려나 있던 '이스라엘의 때'가 다시 회복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던 이스라엘의 독립(1948년)과 19년 후에 있었던 6일 전쟁(1967년)을 통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의 점령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역사적 증거이다.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로 시작되어 19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이방인의 때' 동안 이스라엘은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이스라엘의 중심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었다.

비록 '이방인의 때'가 이어지는 동안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 잠시 비켜서 있었기는 하였지만,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었다. 1948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독립은 그런 점을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 그대로 독립을 통해 긴 시간 공백을 뛰어넘어 역사의 중심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그런 '이방인의 때' 동안에도 유대민족은 변함없이 이스라엘이라는 중심적 위치를 상실하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방인들의 무시와 억압 속에서도 유대민족은 하나님 섭리역사의 중심점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지켜온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가 암시하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가치 없는 주변 지역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열강들이 지배하는 동안 이스라엘 땅은 관심에서 벗어난 변두리 땅에 불과하였다. 특히 오스만제국의 지배 하에서 팔레스타인은 갖은 수탈에 시달리면서 전국이 모두 황무지로 전락하였다.

그에 대한 역사적 증거는 마크 트웨인(1835-1910)의 성지여행기록인 'The Innocent Abroad'(1869)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67년 6월에 출발한 팔레스타인 여행에서 그가 느낀 점은 세 단어 곧 'emptiness, ruin, disappointment'로 요약된다. 그런 불모지 땅에 유대인 '알리야'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변화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런 초기 개척자들의 노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놀라운 경제적 부흥이 일어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이방인의 때'는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구심점인 이스라엘보다 원심인 열방에 더 큰 관심을 두신 때였다. 그 결과 교회는 이스라엘 이외의 이방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번성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기간동안에도 하나님 구속역사의 구심점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점은 복음이 열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영원한 중심점이 없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복음의 중심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중심지가 아니라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의 서진운동'이라고 부른다. 복음의 그런 확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점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중심으로 옮겨져야 했었다. 소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복음의 중심지가 아니라 지나간 역사의 흔적들뿐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섭리 역사의 구심이며 영원한 중심점이다. 거기로부터 원심인 열방으로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확장되면서 구속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구심과 원심이라는 이런 성경의 구조적 틀은 바울이 강조한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b) 이해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학자들은 이 구절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유대인 우선순위에 대한 이들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과거에는 그러했음을 강조하는 역사적 단절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의 우선순위가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연속성의 입장이다. 운동력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흐름은 구심과 원심의 균형 속에서만 가능하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상실되면 운동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 구원역사의 구심인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여 원심인 열방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출발지인 이스라엘은 흔적뿐인 역사의 유적지가 아니다. 오히려 원심력을 만들어주는 여전히 살아있는 구심이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라고 하면서 곧 바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한 것이다. 결국 바울은 운동력을 만들어주는 구심과 원심의 원리처럼 유대인과 헬라인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중심을 이루는 구심은 하나이지만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원심은 복수라는 점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단수로 표현하지만, 이방인은 복수로 제시되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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