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에 위치한 반석장로교회가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믿음으로 내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민족을 품고 베푸는 교회’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1985년 박성만 목사 가정을 중심으로 개척된 반석교회는 두 번의 성전 건축을 진행했고, 두번째 건축을 진행하던 중 ‘동성애 안수’에 동의한 기존 교단으로 부터 탈퇴를 감행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며 은혜를 구할 때, 홍해를 가르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의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몇 번의 인터뷰 요청 끝에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던 박성만 목사는 “한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가 특별히 잘나서라던가 의로워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서두를 뗐다.

그는 “사회적으로 결혼의 정의가 광범위하고 자유로워지고, 신학적으로까지 동성애 안수가 인정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작은 구멍 하나가 결국 큰 댐을 무너뜨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넘어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기존 교단 탈퇴는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성경의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남은 ‘양심의 자유’를 위해 가슴 한 켠을 도려내는 듯한 결단이었다. 기존 노회 목사님들도 다 몇 십년 된 친구들로 서로를 아끼고 끔찍히 사랑했고, 물론 지금도 좋은 교제를 갖고 있다. 서로를 속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각자가 처한 목회 현장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했고, 그들의 배려로 최소한의 손해만 감당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Photo : 기독일보)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현재 반석장로교회는 복음적인 장로교단인 ECO(A Covenant Order of Evangelical Presbyterians)에 속해있다. 미국 내 380여 교회가 가입해 있으며 그 중 한인교회는 20여 교회로 총회나 행정 중심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선교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교회 재산권과 치리권은 각 교회에 일임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목회자 교육과 장로 교육 등을 주로 제공한다. 교회에 많은 권위가 부여된 만큼 가입이 쉽지 않은 편인데, 목회자와 장로들의 신앙과 신학을 몇 차례에 걸쳐 철저히 검증하고 시험까지 치른다. 교단에는 각 교회에서 전체 예산의 1%를 선교 교육비로 낸다. 반석교회는 기존 교단 탈퇴에 2년 가량, ECO 가입에 1년이 꼬박 걸렸다. 3년의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과정이 어땠을까?

“우선은 어려움을 겪어 나가며 하나된 마음을 갖자고 나름대로 굉장히 많이 교육하고 기도했다. 기존 교단 탈퇴를 위해 전체 공동의회를 두 번 통과해야 했다. 1차는 담임 목사가 사회를 보는 공동의회로 이것이 통과되면, 6개월 후 노회 총무가 와서 사회를 보는 2차 공동의회를 진행하는데 담임 목사는 참석할 수 없다. 둘다 2/3이상이 동의해야 하는데, 처음 투표할 때 96%, 두번째는 98%로 통과됐다. 34년전 기존 노회 가입할 때부터 당회에서 결단한 것이 돈을 빌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노회는 당시 개척교회 목사에게 사례비를 보조하고, 건축에도 싼 이자로 융자를 해주곤 했는데 우리는 비록 소수인종 중심의 교회지만 베푸는 교회가 되고자 했던 비전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자체적으로 헌신해 기금을 마련해 왔다. 노회에 빚이 없는 것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Photo : 기독일보)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교회는 30년전 손수 지어서 예배드리던 남쪽 지역의 예배당을  6여년 전 떠나며, 흑인 교회가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선교하는 마음으로 비품까지 다 놓고 북쪽으로 올라왔다. 6에이커 넓은 대지에 위치한 극장 건물을 사서 레노베이션을 진행해 곧 4개의 예배당과 34개의 교육실을 갖춘 비전건물 공사가 마무리 됐다. 교회가 사용하기엔 비전건물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청소년을 품어 안아야 한다는 비전으로 체육관과 친교실, 예배당 건축을 진행했고, 기공예배를 드리고 은행 론이 나와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리기 전 탈퇴를 결정했다. 돌연 이 소식을 접한 은행 측에서 노회가 아닌 교회만 믿고는 론을 줄 수 없다고 나와 어쩔 수 없이 건축이 중단되는 시련이 닥쳤다. 탈퇴의 향방도 결과도 확신할 수 없는데다, 건축 중단으로 건축회사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350명 교인 모두가 일이 어떻게 진행될까 숨죽이고 지켜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건축회사에서 교회가 아닌 노회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건 것이다. 다급해진 노회는 박 목사를 등 떠밀다시피 교회를 내보냈다. 2년치 선교비 1만불을 주고, 건축 지연으로 어쩔 수 없이 손해 본 20만 불이 있었지만 모든 게 잘 마무리 된 후부터 바로 건축을 진행해 1년 만에 완공했다. 시작할 때부터 될 것이라 믿었고 약속을 바라보며 나아가니 마음은 늘 평안했지만, 행정적으로도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잘 진행돼야 한다는 긴장감에 박성만 목사는 몸무게가 15파운드나 빠졌다. 하지만 성도들은 ‘출애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길이 열리고, 때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것을 경험하며 출애굽의 현장을 성도들 모두 함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하나되고 뜨겁게 기도하게 됐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때가 되면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작은 것도 나누게 하셨다. 우리와 비슷한 때 탈퇴를 진행했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나오지 못한 교회를 떠난 70명의 백인교우들의 모임인 그레이스쳐치를 2년 동안 우리 교회에서 품었다. 지역 유지인 백인 할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이런 소수인종 교회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수 있는지 감동하며 감사해 했다. 어려움 가운데 건축한 체육관은 커뮤니티를 위해 거의 매일 문을 열고 있다. 8월 중순부터는 문제가 많아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는 K-5학년 학생들을 품어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크리스천 사립학교(Truth Spring Academy)에게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해드렸다. 이민 교회지만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베풀고 나누고자 말씀을 따라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Photo : 기독일보) 콜럼버스반석장로교회

처음 시작부터 다민족교회를 지향해온 반석교회는 교회 한국어 이름에도 ‘한국’이라는 단어가, 영어이름에도 ‘Korean’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다. 이는 코리언 어메리칸이 됨을 부끄러워함도 아니요 더욱이 무시함도 아니다. 오히려 언어와 문화와 인종의 차별을 극복하고 교회의 본질에 더욱 충성하기 위함이며,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들어와 한 교회를 이루기 위함이다. 한인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누리면서 타민족을 품에 안고 즐길 수 있는 다양성의 풍요가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 예수의 피흘리심 안에서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성도들 가운데 백인 25명, 흑인 15명, 비한국계 아시안 3명 가량이 적을 두고 출석하고 있고, 당회에도 백인과 흑인 장로들이 함께 하며 모든 당회와 제직회는 영어로 진행된다. 예배는 11시부터 30분간 찬양과 경배를 이중언어로 진행하고 이후 흩어져 모국어로 설교 말씀을 듣는다. 모든게 35년전부터 이어진 자연스러운 전통이다.

“저의 작은 꿈이 있다면 반석교회가 다민족 교회로서 모든 민족을 복음 안에서 품고 하나돼 성장하는 교회다. 그레이스교회가 얼마전 기공예배를 드리고 1년 안에 건축을 완공하고 나가면, 중국계 교회나 라틴계 교회 역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시설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섬기고 싶다. 체육관에는 평일 내내 지역 청소년들이 찾아오고, 주말에는 배드민턴팀도 와서 연습한다. 다양한 지역사회 섬김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민교회로서 청소년과 다민족을 품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앞으로도 반석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반석같은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해나가는 한편, 열린 마음으로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는 선교의 비전을 이어갈 것이다.”

반석장로교회는 5301 Sidney Simons Blvd. Columbus, GA 31904에 위치해 있다. 더 자세한 교회 문의와 소식은 www.rockpc.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