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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빈, 진화론 반박하고 절대온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

기독일보

입력 Jul 10, 2019 09:37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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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빈은 왜 과학사의 중요한 과학자인가?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절대 온도를 발견한 켈빈

과학사에 있어 켈빈(Lord Kelvin, William Thompson:1824-1907)은 참으로 특별하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였고, 70여 가지 특허품을 가진 발명가였다. 그는 오늘날의 과학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과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든 과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창조 신앙의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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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에 있어 켈빈의 중요한 세 가지 업적

켈빈은 과학사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첫째, 신실한 그리스도인 학자였던 줄(Joule)이 발견한 '줄 열'의 일 당량(當量)에 관하여 연구하여 자신의 이름 켈빈을 사용한 절대 온도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온도의 맨 밑바닥(절대 영도)에 대한 존재는 프랑스인 과학자 카르노(Nicolas Léonard Sadi Carnot, 1796-1832)에 의해 암시되었는데 이 데이터를 실험적으로 연구하여 영하 273도라고 정한 것이 바로 켈빈이다. 이 온도에서 분자는 운동을 멈춘다. 이 실험의 탁월한 업적으로 본명이 윌리엄 톰슨이었던 그는 켈빈 경(Lord Kelvin)에 봉해졌다. 절대 온도 "K"라는 명칭은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둘째, 켈빈은 "에너지"라는 개념을 과학에 채택하고 사용한 과학자였다. 본래 에너지는 철학적 용어였으나 켈빈으로 인해 비로소 과학 용어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셋째, 열이 어떻게 이동하고 서로 다른 에너지 형태들이 어떻게 상호 관련되어 있는지를 다루는 "열역학"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고 사용한 과학자였다. 물론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를 추적해 올라가면 카르노와 열역학과 엔트로피 개념을 도입한 독일인 클라우지우스(Rudolf Julius Emanuel Clausius, 1822-1888)가 있다. 그런데 클라우지우스와 그 공로를 양분하는 인물이 켈빈이다. 마치 미·적분 발견에 있어 영국인 뉴턴과 독일인 라이프니츠가 그 공로를 양분하는 것처럼 클라우지우스와 켈빈은 독립적으로 열역학 제 2법칙의 원리를 정립하였다.

열역학은 영어로 '서모다이나믹스 Thermodynamics'라고 하는데, 이것은 희랍어로 '열'과 '힘'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열역학 제 1 법칙은 에너지의 보존을 표현한 것으로, 에너지는 소멸될 수도 생성될 수도 없음을 나타낸다. 과학의 인과율과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열역학 제 1 법칙은 에너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심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열역학 제 1 법칙이 에너지의 양적인 보존을 다룬 것이라면, 제 2 법칙은 에너지의 질적인 쇠퇴를 다루고 있다. 제 2 법칙은 과거 언젠가 완벽한 창조의 시기가 있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은 그 원인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제 2 법칙에 따르면, 과거 언젠가 우주에 무질서가 들어왔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인류의 죄악과 죽음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즉 열역학 제 2 법칙이란, 근본적으로 우연이 거듭되면서 우주의 질서가 잡혀 갔다는 우연주의 진화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칙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켈빈이 지질학에 있어서의 진화론인 라이엘의 동일과정설과 다윈의 진화론을 구체적으로 부정하던 과학자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의도적 섭리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켈빈의 신앙

본명이 윌리엄 톰슨이었던 켈빈은 영국 글래스고대학 물리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종교적 문제로 스코틀랜드에서 추방된 집안이었다.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기독교적 양심과 경건한 신앙심을 강조하면서도, 학자답게 학문의 자유로움과 깊은 사고를 유도하곤 했다. 이것은 지질학과 천문학까지 포함되는 아주 광범위한 것이었는데, 훗날 켈빈은 이런 종합적 지식을 바탕으로 진화론을 강력하게 반박하게 된다. 이런 환경 아래서 막내 윌리엄이 일찌감치 과학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6살 때의 일기장에 그는 이런 글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에게 10계명과 더불어 또 한 가지 계명을 내려주셨다. 그 11번째 계명은 이것이다. 과학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 올라가라. 거기서 지구의 무게를 달고, 공기의 무게도 달며, 조수에 대하여 알아보아라. 행성들에게 운행의 길을 알려주며, 옛적의 잘못을 바로잡고 태양의 여러 현상을 조절하라."

참으로 놀라운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윌리엄은 자신이 다짐한 11번째 계명대로 과학자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다.

다재다능한 과학자

17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고, 18세 때에는 열역학에 관한 심도 있는 논문을 쓰며 케임브리지 수학 저널에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가 글래스고우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된 것은 겨우 22세 되던 해였다. 그는 상당히 의욕이 강한 교수로, 오래 된 포도주 창고를 개조하여 영국 본토 최초의 현대식 실험실을 만드는가 하면, 탑 꼭대기의 방들을 실험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의욕으로 그는 다방면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과학적 원리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기구들을 개발하게 된다. 널리 알려진 그의 유명한 "열역학과 절대 온도"에 가려져 잘 눈에 띄지 않는 그의 업적 중에는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사무엘 모르스가 발견한 모르스 전신기를 사용하기 위해 영국은 1857년부터 약 10년 동안 대서양 밑바닥에 해저 전선을 설치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여섯 번이나 실패한 끝에 1867년에 켈빈에 의해 이 일이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몇 가지 특수 기기도 발명하였는데, 약한 전류를 측정하는 '검류계', 케이블 전선을 타고 온 메시지를 종이 위에 파형의 선으로 기록하는 전기 펜인 '사이폰 기록계'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 기구는 오늘날 첨단 과학 시대에도 의학과 분석 등 여러 분야에서 엄청나게 많이 응용되고 있다.

또한 유체 식품의 저온 살균법을 발견한 사람이 그와 거의 동시대 과학자였던 프랑스의 파스퇴르였는데, 켈빈은 고체 식품의 냉장과 냉동 처리법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또 줄과 연구한 "줄-톰슨 효과"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확증한 과학사의 유명한 실험이었다. 이 밖에도 특수 나침반, 밀물 썰물 예보 장치, 여러 도량형 기기들이 있다. 천재 크리스천 과학자 맥스웰조차 켈빈이 연구한 전기적 현상과 탄성 사이의 형식적 유비 연구나 유체의 회전 운동 이론 등에 관심을 갖고 그의 성과들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켈빈은 지구 창조 연대를 2천만년(1862)에서 4천만년(1897)까지 계측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업적으로 인해 그는 1890년부터 1895년까지 영국 왕립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렇게 켈빈은 라이프니츠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뛰어난 과학자의 반열에 드는 과학자였다. 아마 인류역사의 다재 다능 과학상과 열심상이 있다면 당연히 이 상만큼은 그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진화론을 반대한 믿음의 과학자

다방면에 대한 켈빈의 독특한 관심은 결국 신앙 양심에 따라 진화론을 반박하는 열심으로까지 발전한다. 어릴 적부터 쌓아 온 과학에 대한 종합적 관심은, 당시 라플라스가 주장한 성운설을 바탕으로, 지구 연대기적으로 보아도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켈빈은 "지구상에서 생명의 시작은 어떤 화학적, 전기적 활동이나 분자들의 운동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생물 창조의 기적과 신비를 직접 들여다보아야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성경적 확신과 믿음의 성숙함은, 그가 17년 동안이나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병약한 아내를 돌보면서도 평온을 잃지 않고 뛰어난 과학자로서 연륜을 쌓아가게 한 지주였다고 생각된다. 그는 아침이면 아내를 거실까지 안아 옮겼고, 저녁이면 다시 안아 침실로 옮겼으며,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고 돌보았다고 전해진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대로 열심으로 삶을 산 사람이었으며, 실로 5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글래스고우 대학의 교수로 일하면서 놀라운 과학적 성취를 이룩하였으니, 어린 시절의 결심대로 또 한 가지 11번째의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밝히는 과학자로서의 삶도 성실히 이룬 사람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지칠 줄 모르고 살아온 그는 학교를 퇴직한 후에도 1899년 75세의 나이로 대학에 연구 학생으로 수강 신청을 할 만큼 전혀 그 열심이 식을 줄을 몰랐다. 1904년에는 글래스고 대학의 총장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서 과학은 분명히 창조의 역사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이 대학자의 이 고백을 반박할 수 있을까? 이 말은 1903년, 그가 80세가 되어서 한 말이었다. 이 노학자는 믿음의 열심이 노년이 되어서도 전혀 식지 않아 이런 유명한 믿음의 고백을 남기고 있다.

이런 모든 열심을 멈추고 마침내 그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안식한 것은 83세가 되던 1907년이었다. 그는 인류 과학사에 그 누구보다도 큰 길을 연 탁월한 과학자였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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