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골로새서 3:15-17, 제목: 그리스도인의 감사

골로새는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100마일 동쪽에 있는 소도시로 근방에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있었으며, 로마제국 당시 직물 공업의 중심지로 각광 받았다. 골로새 교회는 로마 교회와 같이 바울이 직접 설립한 교회는 아니지만,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의 배움을 받았던(행19:10)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졌다고 본다(1:7: 4:12).

에바브라를 통해 로마 감옥에서 교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곳에 많은 이단 사상을 경계하며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그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에게 어떤 길을 걸어야 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간결하게 잘 설명해 주는 책이 골로새서이다.

신앙인의 성숙된 삶은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통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이다. 골로새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도(바른 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며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눠보자.

1.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길

교회는 다니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잘못 믿고 헛수고하는 자들이 많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으면서 자기는 정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열거하면

1) 구원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이룬다고 주장하며 어찌하던 그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한다. 이를 율법주의라고 말하는데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율법을 잘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잘못된 근거에서 이루어진 행위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함이 아니요 자기 의를 나타내려 함이다.
2) 이와는 반대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기에 나는 이미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유함을 얻었기에 내가 무엇을 행하든 구원받음에는 상관이 없다고 자위하며 헛 기쁨과 헛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구원받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망각하고 재멋대로 살아가는 잘못이다.
3) 또한 성도가 조심해야 할 것은 신비주의이다. 천사나 귀신의 역사를 강조하며 자기 삶 속에서 신비한 기적을 구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복권추첨을 바라는 것과 같다. 물론 주께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신비한 기적을 베푸시지만 그 기적을 바라며 신앙생활에 많은 비중을 두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은 그 신앙에 높고 낮음(up and down)의 굴곡이 심하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삶의 쓰나미가 덮칠 때 우울증과 고독 혹은 염세주의로 빠져 자신 스스로 마지막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이 이에 속하게 된다.
4) 신비함을 전혀 용납지 아니하는 잘못된 신앙이다. 자기의 머리의 판단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이성주의라고 말한다. 이들은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이며 성경에 나타나는 기적들을 부정한다. 이는 육안에 보이는 것과 자기 판단의 한계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이러한 자들이 빠져드는 것은 물질만능주의 혹은 현세제일주의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죄이며 이는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빗나감을 말한다.

2. 구원에 이르는 정도(바른 길)

구원에 이르는 정도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기록한 책이다. 즉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말하며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그리스도)를 설명해주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 예수가 무엇을 하셨음을 가르쳐 주었고, 예수께서 구원의 길을 십자가 상에서 완성하셨으며,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이제 심판 주로서 재림하실 것을 약속해 준 책이다. 성경의 모든 초점은 그리스도 예수이며 이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알아야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

바울 사도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3:8-9) 고백했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의 신성으로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1:15)이며,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17),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1:18)다. 그의 인성으로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1:18)이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1::20)시며,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1:22)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영광의 소망”(1:27)이 되신다.

3. 구원에 이른 자의 삶은?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삶 (Life in Christ Jesus)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2:6). 즉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은혜 안에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이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2) 믿음에 굳게 섬. (Standing Firm in Faith) -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2:7). 믿음에 굳게 서려면 뿌리를 깊히 박아야 한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 식물의 뿌리나 건물의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신앙의 기초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3) 위엣 것만 생각함 (Set Mind on Thinks Above) -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3:2). 눈에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물질 세계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영원 세계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한다.

4)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 (Forgive and Love Each other) -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3-14). 그리도인은 주께서 화목제물이 되심과 같이 우리도 나와 너의 관계에서 화목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함 (Praises and Thanks to God in the Name of Lord Jesus)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16-17). 감사는 누가(Who)는 내가, 누구에게(Whom)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무엇(What)을 내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왜(Why)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언제(When)는 매 순간마다, 어디에서(Where)는 어디서나, 어떻게(How)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전심으로 감사해야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감사해야 한다.

나는 신앙인으로 정도를 걸어가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매 순간 자신을 성찰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앞서서 가려다 넘어지지 말고 너무 떨어져 따라 가려다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항상 주님과 동행하며 이 나그네 여정을 주님의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평안과 기쁨을 누리여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자.

성경공부
1. 골로새 교회가 어디에 있으며 그 교회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2. 그리스도인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단과 사이비종교를 말해보라.
3.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무엇이며 성경 말씀을 통해 증언해보라.
4.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정도(바른 길)를 걸어가는 삶이 무엇인가?
5. 그리스도인으로 감사를 누구에게,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 묵상과 나눔
1. 내 삶에서 하나님이나 남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일이 있었는가 말해보라.
2. 내가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