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배 선교사가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서 25일 오후 7시부터 강연을 전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 중 북한 교화소에 최장기로 갇혔다. 무려 735일이다. 2012년 11월 3일, 그는 평양의 한 호텔에서 북한 보위부에 붙잡혔다. 그는 "18번 직접 북한에 사역을 위해 갔다"며 "마지막 여행 때, 외장 하드를 호텔에 놓고 온 실수로 보위부에 붙잡혔다"고 했다. 그의 외장 하드에는 10대 북한 소녀들이 중국에 성매매로 팔려간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붙잡히자마자, 그는 "중국 탈북민 선교 기간 동안, 공급하시고 도우셨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전하며, "'하나님 어디계십니까'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갑자기 오른 손이 따뜻해지면서, 성령께서는 내게 '너의 염려를 내게 맡기라. 내가 너를 돌보리라. 너와 함께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했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보위부는 그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무슨 목적으로 북한에 왔냐"고 취조하더니, 케네스 배 선교사는 "예배와 선교를 목적으로 왔다"고 당당히 고백했다. 보위부 감시원은 "미국이 먼저 핵무기 쏠 가능성은 없기에, 핵무기는 별로 무섭지 않다"며 "다만 예수 바이러스 전파하는 선교사들이 제일로 위협적"이라고 밝혔다. 이유로 감시원은 "우리 북한 체제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케네스 배 선교사는 "복음 통일은 바로 북한 복음화에 있다"고 역설했다. 또 그는 "YWAM에서 파송 받았고, 국제열방대학 로렌 커닝햄 목사에게 안수 받았다는 이유"에서 "북한 보위부는 나를 CIA 요원이라 추궁했다"고 술회했다. 평양에 다시 끌려가 3개월 조사 끝에, 북한 보위부는 그를 "CIA 요원대신 선교사로 북한에 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보위부는 "너는 CIA보다 더 무서운 선교사"라고 케네스 배 선교사에게 말했다. 그 결과 그는 교화소 15년형을 받았다.

절망이 엄습해 올 때, 그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남·북 및 세계 성도들이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은 내게 시편, 이사야 말씀을 통해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너의 피난처가 되어 주겠다. 내가 너를 보호 하겠다'는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노동 교화소의 현실은 고통스러웠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여름 40도, 겨울 -20도에도 하루 종일 노동을 했다"며 "방충망이 없어, 하루 벌레 200마리가 들어오고, 물리고 뜯겼다"고 술회했다. 또 그는 "추위 때문에 손은 저리고, 한 시간 마다 깨서 20분 간 손 털었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밥, 국, 짠지'만 주고 중노동을 시켰다"며 "1시간 만에 허기져, 노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배고픔 속에서 유일한 소원은 배부름 이었다"며 "그 만큼 쉽게 누리던 자유가 복임을 절절히 깨달았던 순간"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고난 속에서, 그는 "매 순간 하나님께 '이 고난 언제 멈추시겠습니까'라고 울부짖었다"고 술회했다. 그 때 그는 "주님은 '너와 언제나 항상 함께 한단다. 고난도 네게 유익이란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히며, "주님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키셨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고난 속에서 누구도 의지할 수 없고, 도움도 바랄 수 없다"면서 "내 스스로 신뢰할 수 없던 교화소 생활에서 오직 주님만이 도움이셨다"고 역설했다.

미국 특사가 그를 구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5분의 면담에서 그에게 돌아온 말은 "미안 합니다"였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당시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보았다"며 "편지 내용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적혔다"고 기억했다. 이어 그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만 믿을 것"이라 적힌 어머니 편지를 전하며, "내게는 가장 어려운 기도였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그는 "집에 갈 권리를 내려놓고, '그저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 27kg으로 체중이 줄기도 했다. 병원에 자주 후송 되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돌보셨다. 그는 "교화소에서 쵸콜릿, 에너지 바 등 먹고 싶었던 5가지 음식, 기도도 안하고 생각만 했다"며 "미국에서 면회 온 어머니가 정확히 5개를 싸가지고 먹이셨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주님이 '너의 염려를 내게 맡기라. 내가 너를 돌보리라'고 약속하심을 깊이 체험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 때 "주님은 내게 '얘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의 아내, 자녀, 네가 살아왔던 모든 삶, 사역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주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더 사랑하려 노력했다"고 회고하며, "주님은 내게 '어린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나는 이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며 "주변에는 보위부 간수, 감시원들 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너는 죄수로 온 게 아니다. 선교사로 왔고, 내가 보낸 목자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는 강조했다.

케네스 배 선교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케네스 배 선교사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결국 케네스 배 선교사는 "노동 교화소에 있는 보위부원들도 예수 이름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란 걸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 보위부 간수는 아무도 없을 때, 내게 조용히 다가와 '103번' 대신 '목사님'이라 불렀다"며 "보위부원은 '예수 믿으면 좋은 게 있나요'라고 내게 물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보위부 간수는 "북한은 자력갱생만 강조하는데, 예수 믿는 건 참으로 부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보위부 간수는 평양에서 대학 나온 엘리트였다"며 "상식적으로 아는 이름인 예수를 지운 곳도 바로 북한"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김일성은 주체 사상을 만들면서, 예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지적했다. 왜냐면 그는 "성경에서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 때문"이라며 "예수 이름 지워서라도, 사람들이 생명 얻지 못하게 하려는 사악한 주체사상"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는 "통일을 두고 보통 사람들은 경제 논리, 핵무기 논리로 논의 한다"며 "통일의 절대적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 아니고선, 예수 이름을 듣지 못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사명을 가지고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며, "노예로 살다, 노예로 죽어 지옥 갈 북한 2,500만 명에게 예수 이름 듣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강력히 반문했다.

이처럼 그는 "예수 이름 유일하게 아는 내가 북한에 간 것"이라며 "교화소에서 예수 이름은 나 밖에 모르니,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로 파송하신 셈"이라 강조했다. 다만 그는 "예수 이름 전하면 북한에선 3대를 멸족 시킨다"며 "특히 말로 전하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께 "선교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더니 그는 "하나님께서는 내게 '삶으로 예수를 전하라'고 말하셨다"며 "매일 아침의 기도가 '오늘 하루 주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였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매번 꾸짖고 감시하고, 욕하고, 때리는 보위부 간수에게 혈기 날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이럴 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할 까 항상 생각했다"면서 "주님은 내게 '너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셨다"고 기억했다.

때문에 그는 "캄캄한 밤에 할 수 있는 유일함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며 "소망을 놓치 않기 위해 하나님 약속 붙들고 찬송했다"고 술회했다. 그의 찬송소리에, 그는 "보위부원들은 다 들었다"면서 "그들은 내게 '우리가 간수고, 너는 죄수인데 네가 더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들의 말을 빌려 "당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데, 내 주 예수 모신 곳에 행복이 어디 있을까"라며 "나는 김일성 믿어봤자 소망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 이길래, 이 상황에도 행복 한가"라고 말하던 간수들 반응도 덧붙였다.

계속해서 그는 그들과 말을 붙이며, 삶으로 따뜻한 '작은 예수'가 되어 줬다. 목사로서 보위부 간수와 몰래 상담하고, 그랬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 그는 "얼마 뒤 특사가 와 미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왔다"며 "보위부 간수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더니 그는 "보위부 간수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워했다"며 "어떤 간수는 '너 가면 말동무 어디가노'라 응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예정돼 있던 특사는 오지 않았다. 미국으로 갈 기회는 취소된 것이다. 그는 "집에 갈 권리 포기는 날마다 하는 것"이라며 "주님을 더 사랑하고, 양을 치는 결심은 날마다 하는 것임"을 술회했다. 한 보위부 간수는 그에게 52주 동안 "너 버림받았다. 돌아갈 희망 포기해라"고 절망을 불어넣었다. 반면 케네스 배 선교사는 "내가 이 간수를 믿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품을 것인가"를 당시 다짐을 회상하며, "우리가 견고히 신뢰할 대상은 주임이고, 약속의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이 증거로, 그는 "특사와 면회 때 받은 편지 450통 모두는 '케네스 배 선교사가 돌아오길, 기도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당시 17만 미국 시민이 나를 위해 오바마에게 청원하기 까지 했다"며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짐을 믿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인내가 어려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드디어 2014년 12월 3일, 억류된 지 735일 째 되는 날에, 케네스 배 선교사는 미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는 "고난은 주님의 심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고난을 통해 북한 주민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들었던 하나님 음성을 빌려 "내가 2,500만 북한 주민의 눈물을 기억하는 것"처럼 "너도 그들의 아픔을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나게 하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나의 송환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고, 응답된 것"처럼 "북한 주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기억하자"고 촉구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북한을 위한 100만 기도용사를 세우기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느헤미야기도 사역"이다. 그는 "북한 주민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기도 서약"이라며 "이를 위해 미국 백악관, 국무부 등지를 다니며, '북한 주민들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 주민에게는 자유와 인권이 필요하다"며 "자유를 누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게 복된지를 북한 교화소에서 깨달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 그는 "북한을 무조건 정죄하는 것"보다 "우리 대한민국부터 회개하고, 저 땅에 있는 주민들에게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도록 기도하자"고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도, 기억 같은 작은 거 하나 심을 때, 큰 열매 맺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질문이 이어졌다. 한 성도는 "왜 북한 전문가들은 통일이 어렵다고 말하는가"를 질문했다. 이에 케네스 배 선교사는 "독일은 통일 전 동·서독 간 교류가 있었다"며 "한국은 교류가 막혔고, 민족은 원수로 등진 상태"라고 했다. 이어 그는 "북한 주민들은 다 통일 얘기 한다"며 "이는 북한 김일성 식 적화통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즉 그는 "지금은 장마당 시대"라며 "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장마당을 통한 외부정보 유입"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통일의 주체를 정권으로 보면 통일은 불가능"이라며 "북한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 하에 신앙의 자유 회복은 어쨌든 불가능"이라고 단언했다. 때문에 그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의 주체가 돼야 한다"며 "통일을 앞당기는 일 또한 신앙 시민들이 기도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통일의 날은 도적처럼 찾아올 것"이라며 "우리가 기도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도 하실 것"이라 했다. 아무리 "북한이 통제가 두터운 사회라 해도, 우리가 기도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일을 이루실 것"이라 그는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