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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위한 학교… 그 아이가 예술 통해 예수 만나면, 세상 바꿀 것

기독일보

입력 Jun 26, 2019 09:4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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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승의 러브레터] 망하지 않는 학교 입학식

▲입학식 기념촬영 모습.

▲입학식 기념촬영 모습. (포토 : )

1. 사랑하는 사람은 금세 티가 납니다. 자기들은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해도, 얼굴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지고 시간을 쓰는 모습에서, 물질을 사용하는 비율에서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랑은 눈에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도 눈에 보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처럼,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실물)입니다. 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눈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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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의 순간에 무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사랑의 편지는 지난 달꿈예술학교의 입학식에 전했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해드립니다.

최근 안산 동산고나 전주 상산고 등 많은 자사고들이 자사고 지정 취소가 되면서 시끄럽습니다. 학부모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혼란스러울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습니다.

또 대부분의 학교가 미션스쿨입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작은 대안학교이지만 미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교를 하고 학생과 더불어 살다 보니, 만나게 된 원칙이 7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세운 원칙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발견한 원칙입니다. 이 7가지 정체성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2. 첫째로 세상의 기준대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판단하지 마세요.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 5:35)".

세상의 기준대로는 아이는 죽은 게 맞습니다. 네, 숨을 안쉬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야이로에게 와서 말해요. "제발 귀찮게 하지 말아요. 죽었다구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39절입니다.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똑같은 대상. 똑같은 환경. 그러나 해석이 다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어진 시험 앞에서 해석을 달리 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청거리지 말고, 서로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공부 못하면 친해지지 않게 하는 부모들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멀리하게 하고, 결국 결혼할 때는 돈과 집안을 봅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성실하지 않으면 꿈까지 판단하고, 노래방 좀 다닌다고, PC방에 좀 갔다고 서로를 멀리하게 하는 세상입니다.

자녀들에게 항상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말로는 가르치더니,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교육을 시킵니다.

결국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걸 배우고 말았습니다. 자녀의 분명한 재능을 똑같은 색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무지개만 해도 7가지입니다. 음악은 5개의 줄이 있습니다. 숫자도 10가지가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잘 만나면 얼마든지 다양한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에게 한 가지를 가르칩니다. 색깔도 하나, 음도 하나, 숫자도 하나입니다. 숫자 1만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름이 일치될 때 완전히 아름다운 하나가 되는데, 우리는 모두 한 가지 색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이도 자는 것 같고 세상도 자는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당연히 생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생기가 없으니 어른이 되어도 생기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어야 하는데, 살기 좋게는커녕 당연히 죽은 것 같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검은 세상입니다.

마가복음 5장. 귀신들린 청년이 살고 있던 거라사가 그대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무덤에 거하던 청년의 삶, 사람들이 온 몸을 묶어버린 삶, 힘을 가졌지만 그 힘으로 자기를 해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기준대로 바라보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 둘째. 상대적 평가로 비교받는 세상에서 한 명의 독립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상처받는 것은 비교 때문입니다. 상대적 평가때문입니다. 엄친아, 엄친딸 속에서만 삽니다. 부모 마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부모들도 늘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자녀를 그렇게 봅니다. 이겨야 하는 세상입니다.

노는 것이 못마땅해집니다. 잠 좀 잔다는 것이 갑자기 안타까워집니다. 어느덧 예배드리러 간다는 것도 아까워집니다. 방학이 되면 수련회 시간에 맞추기보다, 자기개발 캠프를 보내고 영어 캠프를 보내는 것이 이득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이라는 사실을 잊고 내 소유로 착각하고 마는 순간, 아이들은 철저히 세상의 가치관에서 평가받습니다. 점수로 평가받고 학교에서는 등급으로 평가받습니다. 고기도 아니고, 등급으로 평가받아 가치가 매겨집니다.

'왕따'가 이제는 다양한 용어로 등장했습니다. 아싸와 인싸로. 이제는 얼굴 보고 왕따하는 건 기본이고, 보이지 않는 카톡에서도 서로를 평가합니다. 상대적 평가로 절대적 가치가 훼손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아시고 주님이 해답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3-6절입니다.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99마리를 두고 갔습니다. 예수님은 1마리보다 99마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상대 평가의 시대에, 1마리나 99마리나 같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셔서 잔치를 연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서 잃어버린 어린 양 같은 존재의 귀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1명을 선택하기 위해 99명을 버릴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정말 믿음입니다. 그러니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 한 명은 여러분이 에로스적 사랑으로 여기는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에로스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아가페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우리 모든 것과 바꿀수 있는 것과 동일한 가치입니다. 아깝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달꿈학교는 한 명을 보는 학교입니다. 생길때부터 한 명을 봤기 때문에, 매년 한 명의 정규학교 학생을 받습니다. 아무리 많아져도 5명을 넘지 말자고 했습니다. 숫자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 명의 귀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4. 셋째. 사랑이 가르침보다 우선입니다(눅 15:18-24).

돌아온 탕자로 알려진 둘째 아들은 죄인입니다. 그는 아버지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탕진했습니다. 이미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미리 상속받는 것은, 당시 법률상 부자관계가 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탕진하다니요. 돌 맞아 죽어 마땅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못된 놈이, 집에 돌아온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고프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집 생각이 난겁니다. 아버지 품이 그리워서가 아닙니다. 그 분께 죄송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자기 배고프다고 생각난 것입니다.

버르장머리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야 마땅합니다. 아버지가 저 멀리서 기다렸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못된 놈을 보더니 달려가 끌어안고 말합니다. "내 아들, 집에 가서 잔치 열자...."

아무도 이의제기를 못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바로 세웁니다. 저는 그래서 달꿈학교의 교육적 바탕을 '양육적 교육'이라고 명했습니다.

양육과 교육을 분리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가르침 이전에 사랑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판단하지 말고 서로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달꿈예술학교는 예술이라는 장르를 매개체로 삼습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상처입은 아이들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판단받아 말 한 마디 하기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상처받았습니다.

죽은 것이 아닌데도 죽은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예술은 말이 없어도 표현합니다. 비언어적, 비지시적, 따뜻함, 자유로움..., 거기에 맞는 것이 예술입니다. 언어가 달라도 감동을 느낍니다.

예수님과 너무 닮았습니다. 죄인들을 보고 그들을 향해 먼저 같이 밥 먹고 싸매셨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눈물 흘렸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음악이고 미술이고 사랑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달꿈예술학교
▲류한승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5. 넷째, 그렇지만 예술이 목적이 아닌 통로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마 6:33).

달꿈학교의 내부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로 예수를, 예수로 세상을'입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먼저 '예술로 예수를'입니다. 즉 예술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 예술은 자유롭습니다. 따뜻합니다. 사랑의 감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래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따뜻해서 예수님을 잊게도 합니다. 저는 많이 봅니다. 예술이 자유롭다 해서, 참 자유 되신 예수님을 따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잘못 하면 위험해집니다. 예술이 사랑이어서, 사람의 사랑만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학교는 예술을 매개체로 하지만, 예수가 중요함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돌과 가수 뮤지컬 스타를 꿈꾸면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통로입니다.

예술 자체만 가진 것의 위험성을 우리는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 자유롭고 싶고, 더 따뜻함을 느끼고 싶고, 더 사람들의 인기를 느끼고 싶게 만드는 마약 같은 존재임을, 최근 뉴스를 통해 우리는 느낍니다. 따라서 예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것은, 기독교적 논리이기 전에 예술이 고민해야 할 이슈입니다.

6. 다섯째, '예수로 세상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세상에 가기 전 학교에서는 어떻게 교육받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 오면 이사야 11장이 말하는 천국을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 천국은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숫자가 많고 화려하면 천국의 환희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이사야 11장이 말하는 천국은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화평에 있습니다. 평등에 있습니다. 사자가 초식하는 동물과 같이, 풀을 먹을 줄 알아야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담임이면서 교장이면, 당연히 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자여야 한다고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저는 생명샘교회를 목회하면서도 철저히 이사야 11장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달꿈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편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 그리고 저와 함께하는 섬기는 분들 한 명이라도 이 마음을 알아, 자신이 낮아지고 평등해지는 것이 '참된 리더십'임을 깨닫는다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질 것입니다.

7. 여섯째, 예배가 모든 교육의 기본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우리 학교는 예술 수업이 훨씬 많습니다. 또 학습 수업도 있습니다. 매우 뛰어난 선생님들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방점은 예배에 있습니다.

오전에 아이와 큐티를 같이 하고, 저녁에 예배드립니다. 목요일에는 찬양집회도 다닙니다. 물론 피곤합니다. 제 스타일의 예배가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덕분에 저는 정말로 쉴 시간이 없습니다. 솔직히 지난 주 목요일 말씀은 불편했습니다. 네, 그런데 갑니다.

저의 불편함보다도, 아이에게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저는 좋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불편한 예배에 익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사람 때문에 예배드리거나, 사람 때문에 예배를 피하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선호하는 말씀과 선호하는 단체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불편해지는 시간인 것도 예배임을 먼저 배웁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삶의 매 순간이 예배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냥 예배 의식에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그냥 밥 먹지 않고 영화 보지 않습니다. 밥 먹을 때도 같은 식탁에서 먹습니다. 놀 때도, 영화를 봐도 함께하고 꼭 나눕니다.

여러분, 저는 영화 <극한직업>을 봐도 주님이 생각이 납니다. 섬뜩했습니다. 그래서 웃을 수 없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복음을 만났습니다. 전율이었습니다. 그래서 'Speechless'가 달리 들렸습니다. 심지어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서도 저는 주님의 메시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코미디 영화인데 웃을 수가 없고, 공포영화인데 무섭지가 않습니다.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떄문이고,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건 마시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8. 일곱 번째, 아이의 필요에 맞추어 교회도 학교도 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 땅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사람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사람의 모양으로 '변화'하셨습니다. 종의 '형체'가 되셨습니다. 높은데 낮아지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웠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우리 학교는 학생의 요구에 맞춰 변화해왔습니다.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만 남는다면, 모든 형태는 변화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생명샘교회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사울 같은 마음 갖지 않고, 언제나 다윗 같기를 바랍니다. 작고 볼품없는 외형을 가졌지만, 그래서 외형을 추구하고 갖추기보다, 한 생명에 몰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도와 형식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생명이 중요합니다. 그 생명을 위해 얼마든지 학교가 형태를 바꿀 수 있어야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0.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삶은 변화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은 곧 생명입니다.

한 명을 바라보며, 한 명을 위해 아낌없이 변화할 수 있는 우리가 된다는 것은, 곧 아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학교를 보면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한명은 행복하겠네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그 아이가 행복한지는 모르겠어요. 행복한 건 저입니다. 우리 학교입니다. 우리 교회입니다.

맞습니다. 한 명을 보는 학교이므로, 그 한 명이 있어야 학교가 학교 됩니다. 우리 학교는 적어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보고 다들 왜이렇게 밝냐고 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1마리를 찾음으로, 99마리의 불완전성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런 비유가 많습니다. 탕자가 돌아와야 형제 공동체가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잃은 양 1마리가 돌아와야, 100마리의 형제 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완성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학생이 있어서 학교가 행복한 것입니다. 학생이나 학교나 똑같은 존재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달꿈예술학교
▲입학생과 졸업생들의 무대.

11. 최근 안산 동산고나 상산고 등의 자사고 재지정이 취소가 되면서 연일 시끄럽습니다.

상산고는 창의성을 높이고 사회를 밝게 하는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교육하는 이념이 있습니다. 창의력과 자율성도 높이고자 합니다. 안산동산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이 미션입니다.

미션과 비전을 위해 침묵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 미션과 비전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지, 아니면 자사고라는 형태와 외형적 조건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12. 우리 학교는 미션에서 '예수님'을 빼지 않기 위해, 서울시와 1년 넘게 씨름했습니다. 그로 인한 재정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심각한 타격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건 자랑해도 됩니다.

달꿈예술학교의 가치와 비전이 혁신적이고, 한 사람을 위해 운영되는 이 학교가 어떻게 이것을 운영하는가 궁금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어보십니다. "안 망하는 게 신기하다"고요.

그런데 그 이야기는 처음 설립할 때부터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이어 물어봅니다. "지금 정부 후원이냐 기관 후원 어디서 얼마큼 받으시냐"고요.

죄송한데, 저희는 아직 CMS 후원도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후원하려면 직접 자동이체 연결하는 번거로움까지 거쳐야 합니다. 기관에서 후원받는 곳도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대답합니다. "절대 안망해요. 왜냐하면, 이미 졸업생이 나왔으니까 안 망해요. 한 명이 입학했으니 안 망해요. 학교의 외관이나 제도, 형식은 무너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한 명이 나왔기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않아요. 그 학생이 이미 학교거든요."

13. 이 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생이 살아 있습니다. 이 학생이 가는 곳곳마다 '달꿈'이 움직입니다. "달리다굼" 외치시는 주님이 가십니다. 그래서 학교는 망하지 않습니다. 한 명이 천하와 같습니다.

그 한 명이 예술을 통해 예수를 만나면, 예수로 세상을 바꿀 아이가 될 것을 굳게 믿습니다. 사람이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곧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달꿈예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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