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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칼럼] 일본의 성자 가가와 토요히코 목사님

기독일보

입력 Jun 26, 2019 04:13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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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기독교 신자가 국민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 기독교는 세계적인 신앙인을 배출하였습니다. 필자는 일본의 신앙인 가운데 몇 사람들을 가슴으로 존경합니다. 필자가 존경하는 일본인 몇 사람을 소개하면 먼저 여류 소설가로 수많은 신앙적 작품을 남긴 미우라 아야코입니다. 두 번째는 탁월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입니다. 세 번째는 일본의 작은 예수 가가와 토요히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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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토요히코 목사는 1888년 7월10일 고오베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을 졸업을 하고 고오베 신학교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일본의 기독교 전도자요 사회사업가요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하시쿠니 내각에 일원이었고 평화의 지도자요 그의 인도주의의 열렬한 전도에 감동되지 않는 이가 없을 만큼 전후 일본의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개인자격으로 내한하여 당시 대통령 이승만을 방문하여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하였던 유명한 신앙인입니다.

토요히코 목사는 일본의 빈민 운동을 비롯해 노동운동, 농민운동, 탁아 운동, 그리고 소비자 생활협동조합과 의료 생활협동조합을 탄생시킨 사회 운동가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린 "사선을 넘어서"등 수많은 책을 저술하고 노벨 평화상과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추천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빈민가에서 헌신적으로 빈민들을 돌본 삶을 살아서 간디, 슈바이처와 더불어 20세기에 헌신적인 사회 운동가로 평가 받았습니다.

도쿠시마현의 명문 이소베 가문 출신이었지만 첩의 아들이었고 조실부모하여 할머니와 계모의 손에 양육되면서 성장과정에서 많은 설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도요히코는 중학교 시절 로간과 마야스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습니다. 원래는 영어를 배우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토요히코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돌봐주던 숙부는 동경대학에 들어가 가가와 가문을 일으켜 줄 것을 기대했으나 토요히코는 메이지 학원 신학교에 입학하여 갈등을 빚고 경제적 지원도 끊겼습니다. 그는 이어서 고베 신학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합니다. 결핵에 감염되어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시골에서 요양하는데 이때 나가오 목사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당시 나가오 목사는 무려 5년이나 아무도 전도하지 못했지만 카가와에게는 그의 진로를 바꾼 스승이 되었습니다. 핏덩어리를 토하면 걸레를 가져와서 닦아주고, 같이 밥도 먹는 나가오 목사의 헌신적인 섬김에 감화를 받고 자신도 빈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 후부터 가가와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돕기를 자주 하였습니다. 빈민촌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옷을 벗어주고, 집으로 데려와 재워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고베의 빈민지역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곳은 가난과 질병, 비참함과 범죄가 들끓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살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을 돌봐 주었습니다. 그는 슬픈 현실에 놓인 어린이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며 구체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한 벌 옷의 제자도'의 가르침을 설파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들에게 나눈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빈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천국옥'이라는 밥집을 열어 음식 배급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후원금이 중단되어 빈민촌 활동이 어려워지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로 유학을 갑니다.

유학을 마치고 교회나 신학교가 아닌 고베의 빈민촌으로 다시 돌아간 그는 빈민촌 구제 사업과 전도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는 구제를 넘어서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으로 칫솔공장을 열었습니다. 빈민촌에 일자리를 마련해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어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아울러 빈민들의 생활고 개선을 위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습니다. 오사카 서구에 유한책임 구매조합, '공익사'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연결하는 조합을 만든 것입니다. 쌀, 소금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취급하였으며 술은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월드쉐어를 섬기면서 국제 개발을 도모합니다. 얼마 전 아이티 공화국 출장 후 쓰레기 마을 투찌에의 구호 활동을 고민하다가 문득 가가와 토요히코 목사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적 그리스도인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가가와 토요히코 목사님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과 자활 자생의 정신이 현대 국제 구호 개발이 가야할 길인 듯합니다. 한국 사회 복지의 대부인 대구대학교 설립자 성산 이영식 목사님은 가가와 토요히코의 영향을 받아 한국 사회 사업대학(대구대학교 전신)을 구상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입과 말로만의 신앙이 양산하는 수많은 부작용을 보면서 가가와 토요히코 목사님의 실천적 사랑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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