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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인류 최고 과학자, 패러데이

기독일보

입력 Jun 19, 2019 09:5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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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왜 패러데이를 인류 최고의 과학자였다고 극찬했을까?

 

역사상 인류가 찾아내고 만든 것들 가운데 우리들 일상생활에 가장 큰 변화와 영향을 준 것은 전기의 이용이다. 오늘날의 교통, 통신 문명이나 대형 빌딩, 공장, 아파트, 대형 쇼핑 센타 등은 모두 전기 문명의 덕택이다. 컴퓨터, 텔레비전과 같은 다양한 전자 제품들도 모두 전기의 덕분이고, 가정의 모든 일상생활도 이제는 전기가 없으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전기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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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류가 전기를 이용하기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 볼타(1745-1827)는 전지를 만들었고, 영국의 위대한 크리스천 과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Humphrey Davy, 1778-1829)는 전기 분해에 의해 나트륨, 칼륨 등과 같은 알칼리 금속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광산에서 쓰는 안전등도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현대의 전기 문명이 시작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방법이 필요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험프리 데이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그가 그의 제자 마이클 패러데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것은 패러데이야말로 오늘날 찬란한 전기 문명의 시대를 일궈낸 진정한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역사상 갈릴레이, 뉴턴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만한 또 한사람의 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패러데이뿐이라고 그의 업적을 극찬한 적이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마이클 패러데이(Michal Faraday, 1791-1867)는 영국 런던 근처에 있는 뉴인튼 보츠라는 작은 마을의 대장장이였던 제임스 패러데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한 패러데이에겐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이나 그림도 하나 없었다. 놀이라고는 형들과 어울리거나 그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하던 대장간을 우두커니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어린 마이클에게도 신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센디매니안이라 하는 작은 교파에 속하지만 성경을 철저히 믿는 한 작은 교회에 온 가족과 함께 나가는 일이었다. "마이클, 오늘도 참 일찍 나왔구나." "마이클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아이는 처음 보았어요."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어린 패러데이의 순수하고 맑은 신앙을 칭찬하곤 했다. 패러데이는 훗날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성경의 내용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들에 의해 더해지거나 보태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모든 시대와 환경 가운데 사람들에게 유일하면서도 충분한 안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하신 일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예수님을 믿은 증거란 예수님이 명하신 일들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패러데이의 어린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이클, 우리 집 형편이 무척 어렵구나. 네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일을 도와야겠다." 패러데이는 학교 공부가 즐거웠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작은 기회가 찾아오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패러데이는 신문 배달원이 되었다. 당시의 신문 배달이란 한 집에서 다 읽으면 얼마 후 도로 찾아다가 또 다른 집으로 그 신문을 배달하는 그런 식이었다. 마이클이 하는 일은 바로 이 일들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열세 살이 되던 해 마이클은 좀 더 돈벌이가 되는 조지 리바우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책을 만드는 제본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제본소에서의 7년은 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수많은 귀한 책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대영 백과사전』을 탐독할 수 있었고, 제인 마세트(Marcet) 부인이 지은 「화학이야기」라는 책은 그가 과학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었다. 패러데이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왕성한 상상력을 가진 젊은이였고 마세트 부인의 책은 그 상상력을 탐구를 통해 사실로 확인해주는 즐거움을 선물한 고마운 책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정말로 큰 행운이 찾아왔다.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와의 만남

"패러데이, 자네가 과학에 큰 흥미가 있는 것 같으니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한번 들어보게나."

어느 날, 한 손님이 당시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로 왕립협회 교수였던 데이비의 공개 강연 4회 분 입장권을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패러데이에게 존경하던 데이비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강의를 그저 듣기만 하지 말고 노트를 만들어보자." 패러데이는 강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나갔다. 그리고는 한데 묶어서 일하던 제본소에서 386페이지나 되는 책으로 만들었다. 패러데이는 데이비 경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편지도 함께 썼다.

"존경하는 데이비 선생님, 선생님의 강의에 큰 감명을 받고 여기 그 내용을 정리한 책을 보내드립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며 과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강연을 이렇게 세밀히 듣고 정리하여 책을 만들어냈다는 데 대하여 데이비는 크게 감동했다. "실험실의 병 씻는 일이라도 데려다 시켜 보게. 그 친구, 무슨 일이든 시키면 당장이라도 할 만한 괜찮은 조수가 되겠어."

성탄절이 다가오는 1812년 겨울, 편지를 받아본 데이비가 친구에게 패러데이의 편지를 보여주자 그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1813년 겨울, 마침 실험실 사환과 실험 기구 제작상이 사소한 다툼으로 사환이 파면되는 일이 발생하자 데이비는 곧바로 패러데이를 채용한다. 적은 보수에다가 패러데이가 하는 일이란, 데이비가 강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실험 기구를 장치하고, 실험 일지를 적고 청소를 하는 등 온갖 굳은 일이었다. 훗날 험프리 데이비와 패러데이는 다 같이 영국이 자랑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두 사람 사이의 나이는 불과 10여 살 차이가 날뿐이었다.

과학자로서의 패러데이

패러데이는 금세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점점 더 중요하고 새로운 일들이 그에게 맡겨졌다. 1821년에는 같은 교회의 일원이던 사라 버너드라는 처녀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그의 연구는 놀랍게 성취되기 시작했다. 1823년, 염소의 산화에 대한 연구로 마침내 그는 왕립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1824년에는 동 실험실의 소장이 되었다. 1825년에는 오늘날 화학 공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화합물 가운데 하나인 벤젠이라는 물질도 발견한다.

"데이비 선생의 강연회를 통해서 오늘날의 내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어린이들을 위한 쉽고도 재미있는 과학 강연회를 마련해 보자."

1827년 성탄절을 맞아 그는 왕립협회의 주관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강연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이 행사는 오늘날까지도 영국의 텔레비전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 1831년, 드디어 패러데이는 오늘날 전기 문명의 시대를 연 발전기의 기본원리가 되는 전자 감응 현상을 발견했다. "코일에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코일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자기를 전기로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지금은 과학을 조금만 아는 학생이라면 누구든 잘 아는 이 작은 현상이 바로 전기 문명의 시발을 알리는 패러데이의 발견이었다. 이렇게 그는 화학과 전기를 넘나드는 과학자였다. 그리고 그의 연구들은 물리학과 수학의 영역으로 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패러데이에게 이 부분은 정교하고 열정적인 집중만 가지고 정복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패러데이가 고안하고 제창한 새로운 영역은 패러데이 이후 또 다른 천재과학자요 교회 장로였던 클럭 맥스웰(1831-1879)이 수행하게 된다. 이 난해한 부분은 맥스웰을 다룰 때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한다.

1833년, 패러데이는 전기화학당량에 관한 유명한 패러데이 법칙을 발견하였고, 1837년에는 전자장론(電磁場論)의 기초도 확립한다. 1831년부터 1855년까지 4반세기에 걸친 그의 연구 논문은 『전기학 실험 연구(Experimetal Researches in Electricity)』라는 연구보고서로 집대성되어 있다. 정규 학문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그가 전기학을 연구했다니!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1922-1996) 등과 미 프린스턴 대학에서 1956년부터 유럽 과학-정치사 교수를 지낸 대단히 냉철한 과학사가로 알려진 찰스 길리스피(C. Coulston Gillispie)가 패러데이를 "최고의 질서정연한 과학연구자"였다고 칭송한 것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준다. 패러데이는 스스로 과학자는 "연구, 완료, 발표"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길리스피 교수는 "이 사람만큼 명성을 좇는 야심과 어울리지 않고, 상냥한 성품과 온화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렇다! 패러데이는 야심이 아니라 열정의 사람이었다.

겸손한 믿음의 과학자 패러데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던 그는 마침내 1840년에는 센디매니안 교회의 장로도 되었다. 50세 때부터 교회의 정규적인 설교자가 된 그의 설교를 들은 어떤 사람은 훗날 패러데이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찌하든지 최대한 이용하여 설교하였다."

1845년, 패러데이는 '패러데이 효과'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것은 전파가 한 방향으로 통과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중요한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이때 벌써 영국의 산업화에 의하여 영국 템즈강의 오염을 걱정할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이 밖에도 허다한 연구 업적을 남긴 패더데이였지만, 그는 한 번도 그의 연구 성과에 관하여 자만하거나 교만해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발명에 관한 특허도 한 건 내지 않았다. 비국교도의 장로였던 그는 이렇게 언제나 순진했고 겸손하였다.

"과학적 발견은 누구나 공유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어야 하지요."

만일 특허를 냈다면 패러데이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조금도 그럴 마음이 없었으며 한평생 검소한 삶을 살았다. 청교도의 한 교파였던 그의 교회는 교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저축을 하는 일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히 절제된 삶을 성도들에게 요구하였던 것이다. 1858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보다 못해 일흔 살이 다 된 이 노(老) 과학자를 위해 런던에 한 저택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사람입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제게는 없습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여러 가지 학위와 상을 주려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겸손히 사양하였다. 1867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날 때에도 패러데이는 영국의 위대한 인물들이 묻힌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굳이 사양하고, 하이게이트라는 작은 묘지에 묻히기를 소망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로마서 8장 24절).

그는 진정한 소망이란 이 땅에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영국은 많은 과학자들 가운데 대영제국의 20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을 넣었다. 영국은 18-20세기 중반까지 세계의 과학을 주도한 과학자의 국가다. 영국 화폐에 새겨진 패러데이의 초상화는 영국의 그 많은 탁월한 세계적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영국 사회가 얼마나 그를 자랑스러운 인물로 여기고 있는 지 엿볼 수 있는 상징이 되고 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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