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두렵지 않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뒤 교도소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중근 의사 자신은 의거를 일으켰던 중국 하얼빈에 안장되길 원했고, 그의 친척들은 시신을 조선으로 데려가길 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현지 신문들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한 결과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공개했다.

안중근 묘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후 행적이 담긴 당시 러시아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 1910년 4월 8일자 신문.

공개된 자료들에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거 직후부터 이듬해 3월 순국할 때까지 다섯 달 간의 행적이 담겨 있다.

자료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일제의 첫 심문부터 사형 집행 때까지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로 임했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은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 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