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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학의 개척자 오일러의 신앙

기독일보

입력 May 29, 2019 06:47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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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질서는 창조의 질서이다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질서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성경의 성막과 성전과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치밀한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다. 우주에 편만한 조화와 대칭과 상호의존성은 창조주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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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의 철학자들도 세상에는 정연한 질서(cosmos)가 있음을 일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헬라어 '코스메오'(cosmeo)에는 단순한 질서나 정리만 아니라 분별력 있는 질서와 아름다움과 조화의 즐거움을 탐미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그렇기에 초기 헬라 철학자들이 시작한 자연철학(physica)에서 오늘날 물리학(physics)의 이름이 유래하고 그 헬라가 유럽 과학 탄생의 기지 역할을 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학의 질서

수학도 그렇다. 수학의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에게해 사모스섬 출신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주전 580년 경-497년)가 숫자의 오묘한 질서를 깨닫고 음악에서 수학적 질서가 있음을 알린 것이나 만물의 근원을 '수'라고 주장했던 것은 놀라운 통찰이었다.

이와 같이 물리적 피조 세계의 질서는 반드시 수학적 해석과 설명이 가능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수학도 하나님의 솜씨를 증거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주신 여러 계시 가운데 하나이며 은혜요 표적이라 할 수 있다. 1천 년 전 쓰여 진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의 경전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질서가 있더라"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젠킨스라는 사람은 창세기 1장 1절에 놀라운 수학적 질서가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창조의 선포인 이 창세기 1장의 말씀 안에는 수학을 직접 만드신 분이 아니라면 결코 도저히 계시할 수 없는 엄숙하고 정교한 질서가 그 말씀 안에 담겨있다. 생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수학을 사용한다. 오직 인류에게만 종교심이 있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우연주의 무신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원숭이 같은 유인원들은 우리 인간보다도 더 오랜 연륜동안 진화되어왔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들 유인원들은 기초 수학도 구사하지 못할 뿐더러 작은 종교심도 없다. 종교적 반응과 수학적 추리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닮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오일러, 하나님이 택하신 수학자 중의 수학자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이 수학적 질서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사람들에게 수학적 안목을 베풀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오일러야말로 하나님이 선택한 수학자일 것이다.

오늘날 근대 수학사에 있어 그 기본 체계의 가장 많은 부분이 오일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 수학책에서 쓰이는 많은 기호는 오일러가 도입한 것인데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기호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 문자 π를 지름(직경)에 대한 원주율(2πr)로 표시하여 공식화한 것이 바로 오일러였다. 놀라지 말기 바란다. 오일러가 이 π와 관련하여 공식을 유도하고 완성한 분량은 작은 한 트럭 분량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일러의 천재성과 하나님 앞에서 선택된 수학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목사가 되려 했던 오일러

레온하르트 오일러 (Leonhard Euler, 1707.4.15-1783.9.18)는 스위스의 바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수학적 안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아버지에 의해 싹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버지 파울 오일러는 칼뱅파 목사였다.

13세가 되던 해(1720), 오일러는 아버지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유명한 바젤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오일러는 곧바로 자신의 사명이 신학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통해 흥미를 가지고 있던 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의 수학적 재능은 일찌감치 동향의 유명한 수학자 베르누이(그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가 바로 유체 운동을 수학적으로 나타낸 베르누이 정리를 발견한 사람임)의 눈에 띄었고, 그는 약관 20세에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그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23세가 되던 1730년에는 페테르스부르그 대학의 물리학 교수, 26세인 1733년에는 다니엘 베르누이의 후임으로 수학과 주임을 맡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그저 그는 단순히 뛰어난 과학자의 한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오일러는 누구보다도 역경을 신앙으로 극복하며 과학자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오일러의 믿음

오일러가 소년기 받았던 신앙 교육은 그의 평생에 영향을 준다. 그는 칼뱅파 신앙을 조금도 버리지 않았으며 나이가 들면서는 아버지의 천직으로 되돌아가 전 가족을 위한 기도회를 주관하고 설교를 정규적으로 하던 어느 면에서는 목회자나 다름없었다. 다음의 재미있는 일화도 오일러의 독실한 믿음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한번은 러시아의 여제(女帝) 에카테리나의 궁정에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두니 디드로가 초대된 적이 있었다. 디드로는 이때 러시아의 궁정 신하들에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하기 시작했다. 에카테리나는 오일러가 이 교만한 철학자를 놀려주기를 바랐다. 두 번째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오일러는 이 일을 쾌히 승낙했다.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함"

곧 이런 소식이 궁정에 알려졌다. 디드로도 이 소식을 듣고는 그 내용을 알려고 참가하게 되었다. 궁정의 모든 사람들이 모이자 오일러는 정중하게 디드로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 (a+b)/n=x.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합니다.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지요."

디드로는 갑작스런 이 수학자의 엉뚱한 질문에 무슨 영문인지 잘 몰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궁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폭소가 터져 나왔다. 물론 이것은 디드로가 풀 수 없는 문제요 디드로의 교만을 누르기 위한 수학자가 만들어낸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디드로는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로 두말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한다. 사실 오일러는 하나님은 존재하며 영혼은 물질이 아니라는 논문도 쓴 적이 있다. 이 두 가지 증명에 관한 논문은 당시의 신학 논문지에 실렸다. 수학자로서 오일러의 믿음은 이렇게 확고하였다.

고난 속에 강해진 믿음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28세 때 그는 한쪽 눈을 잃게 된다. 그리고 1766년에는 다른 하나의 눈마저 잃게 되었다. 그는 또한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자녀를 어려서 잃는 비운을 맞보기도 했다.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그가 현대 수학사에 있어 가장 뛰어난 금자탑을 이루었다는 것은, 한때 신학을 공부했을 만큼 독실한 칼뱅주의자였기에 고난을 신앙을 통한 불굴의 의지와 인내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일러, 수학적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천재 수학자

그는 특히 수학의 미적분학, 미분방정식, 무한급수, 해석기하학 등에 흥미를 갖고 많은 공헌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남긴 뛰어난 업적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쉽지 않을 만큼 대단히 전문적이고 난해하다. 역학에 있어서의 오일러-라그랑주의 방정식, 무한급수에 있어서의 오일러의 변환, 오일러의 정수, 오일러 증명, 오일러 적분, 오일러의 수, 강체 운동에 있어서의 오일러의 각, 오일러의 방정식, 오일러의 공식, 오일러의 동차함수의 정리, 탄성이론에 있어서의 베르누이-오일러 법칙 등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한두 개 정도는 귀에 익은 법칙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시력을 잃고 장애인이 되었음에도 천부적인 기억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오일러는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가 수학자로서 연구를 시작한 때는 뉴턴이 사망한 시기에 해당한다. 해석기하학·미적분학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조직적 연구는 초보단계로 특히 역학·기하학의 분야는 충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미적분학을 발전시켜 《무한해석 개론 Introduction in Analysis Infinitorum》(1748) 《미분학 원리 Institutiones Calculi Differontial》(1755) 《적분학 원리 Institutiones Calculi Integrelis》(1768∼1770), 변분학(變分學:극대 또는 극소의 성질을 가진 곡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창시하여 역학을 해석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밖에도 대수학·정수론(整數論)·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삼각함수의 생략기호(sin, cos, tan)의 창안도 그의 공헌이었다. 베를린 시대에 프리드리히대왕의 질녀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쓴 《독일 왕녀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계몽서로서 유명하였으며 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사실 그의 관심은 수학이 적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미치었다. 18세기에 이미 그는 빛의 파동설을 주장하는가 하면 천문학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32권의 책을 저술하는가 하면 7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할 만큼 오일러는 고난 가운데서도 수학적 통찰력이 끊임없이 분출된 과학자였다. 수년전 그의 조국 스위스는 오일러가 남긴 책과 논문과 연구 자료는 현대 중형 트럭으로 두 대 분량에 달했다고 발표하여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오일러를 읽어라! 오일러를 읽어라! 그는 모든 방면에서 우리의 지도자다"

위대한 천재 과학자 라플라스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외쳤다는 이 일화는 오일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수학을 즐긴다?

"오일러는 사람이 숨을 쉬듯, 독수리가 공중을 날듯,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아무 힘도 들이지 않는 듯 계산을 해냈다."

도미니크 프랑소와즈 아라고라는 학자는 이렇게 오일러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칭찬하였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수학 공식을 만들어낸 과학자였다. 또 콩도르세라는 사람이 쓴 「찬사」라는 책에 보면 "오일러는 사는 것과 계산하는 것을 함께 멈추었다"고 말하여, 그의 평생 삶이 얼마나 수학을 그저 즐기고 함께하였는지를 전해주고 있다.

정말 그런가보다. 필자도 세 자녀 가운데 두 딸이 수학을 그저 즐기는 것을 보았다. 둘째는 꼬마 시절부터 수학을 그리 좋아하여 결국 수학교육을 전공해 교사가 되더니 이후에도 수학영재들을 제대로 길러보겠다고 또다시 진학해 수학공부를 지속하는 것을 보았다. 큰딸은 건축학을 거쳐 꽤나 유망한 유럽의 사진작가로 진출하더니 결국은 세계 수학영재들이 모인다는 베를린 공대에 들어가 수학과 물리공부를 다시 즐기고(?) 있으니 신학자인 필자가 보기에 무슨 재미로 그리 수학을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오일러를 생각해보자. 그의 모든 과학적 열매들이 어떻게 우연하게 스위스의 이 한 수학자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오일러의 수학적 발견들은 그가 아니었더라도 훗날 누군가가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신학을 원하던 이 칼뱅파 목사의 아들을 오히려 위대한 수학자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비록 탁월한 수학적 재능이 일찌감치 나타나면서 오일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회자의 길을 가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서는 설교자로서 목회자와 다름없는 경건한 삶을 살면서 믿음을 실천한 굳건한 창조신앙을 가진 참 크리스천 과학자였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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