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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말'이 아닌 '글', 설교 듣는 교인들이 몰입하려면 ‘글’이 쉬워야

기독일보

입력 May 27, 2019 04:2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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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글이다

'설교는 말이다.' 설교는 '말'이 아니라 '글'이다. 나도 글의 중요성을 알기까지, 설교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글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설교는 글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설교가 글인 것은, 설교가 글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말할 글이 없으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특히 설교는 글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설교를 잘하는 설교자들은 설교 원문을 작성한다. 작성된 원고를 소화해 설교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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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글의 시대다. 글을 쓸 줄 모르면 리더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글을 쓸 줄 알면 작가가 된다. 작가가 되면 전문가로서 대우를 받는다.

문맹의 정의가 달라졌다. 전에 문맹은 글자를 모르는 것이었다. 지금 문맹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글은 설교자 자신이다

글은 설교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이는 사람마다 각자의 문체가 있기 때문이다.

글은 자신을 표현한다. 사람마다 손금이 다르듯, 사람마다 문체도 다르다. 이런 이유로 글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설교자는 전공에 따라 글이 다르다. 학부 때 신학을 공부한 사람 특유의 문체가 있다. 학부 때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공대 특유의 문체가 있다. 학부 때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문학 특유의 문체가 있다.

학부 때 신학을 한 사람은 글이 추상적이다. 하지만 문학을 한 사람은 글이 수려하다. 공대를 나온 사람은 글이 투박하다.

글은 설교자 자신이다. 설교자의 자라온 배경, 관심사, 추구하는 설교의 유형이 그대로 드러난다.

설교자는 자신의 글을 쓰려 해야 한다. 남의 글을 처음에는 초서 등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글을 써야 한다.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글은 쉬워야 한다

설교 글은 쉬워야 한다. 쉬워도 아주 쉬워야 한다. 쉬워야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 1학년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도 듣는 수준이 엄청 높아졌다.

반면 설교자들의 글은 대체로 어렵다. 설교자들의 설교 글이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 세 가지다.

첫째, 성경의 단어나 구절을 설명만 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글을 잘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쓸 줄 모르는 것을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이어야 한다. 적어도 논리는 탄탄해야 한다. 논리가 부족하면 교인이 설교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설교자는 글을 쓰되, 쉽게 써야 한다. 글을 쉽게 쓰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을 글을 쉽게 쓰기 때문이다.

글이 어려운 이유는 신학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글을 실용적이어야 한다. 글이 실용적일 때 글이 쉽다.

예수님은 글이 쉬운 것은 글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설교는 나이가 많고, 지식이 짧은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글은 비유법이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법은 실용적인 글이다.

글은 단문으로 써야 한다. 단문이 글이 쉽다. 설교자가 글이 어려운 이유는 글을 중문과 복문으로 쓰기 때문이다.

최근 한 목사님이 제가 쓴 추천사에 일침을 가했다. "글이 어려운 데 왜 글이 좋다고 했냐?"

그 설교자의 글이 어렵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 어렵기에 일주일 동안 읽었는데도 다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책 읽기에 이렇게 고생하기는 오랜만이었단다.

글이 어려우면 사람들은 책을 읽기 힘들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글이 어려우면 읽다가 포기한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이런 이유로 독자들이 필자의 책을 읽은 뒤 자주 듣는 말이 '글이 쉽다', '책을 편하게 읽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글쓰기 위한 그 동안 고생이 눈 녹듯 녹는다.

보스턴 시티라이프 교회를 담임하는 스티븐 엄 목사는 그의 책 《복음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젊은 크리스천을 포함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설교와 사역을 준비하며 유념해야 하는 일곱 가지 특징을 이야기한다.

그런 그가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친숙한 어휘를 사용하라'다. 이 말은 쉽게 설교를 하라는 말이다.

그 말은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이다. 동시에 예수님처럼 일상의 친숙한 어휘로 비유를 사용해야 한다. 친숙한 어휘를 사용하신 예수님의 설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글이 쉬워야 한다.

글이 쉬워야 하는 이유

글은 쉬워야 한다. 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한 것을 피한다. 쉽지 않으면 관심 대상이 못 된다. 이 모든 이유가 뇌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독서도 뇌를 기쁘게 하는 독서를 해야 한다. 뇌를 힘들게 하면 독서를 거부하게 된다. 독서가 김병완은 뇌를 기쁘게 하는 독서법을 초식 독서법과 의식 독서법의 종합인 초의식 독서법이라고 했다.

독서도 뇌를 기쁘게 한다면, 글은 더더욱 뇌가 기뻐하는 글을 써야 한다. 서울대학교 황농문 교수는 그의 저서 <몰입>에서 몰입이 뇌를 춤추게 한다고 했다.

설교자의 설교 글이 쉬워야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몰입할 수 있다. 어렵다면 몰입이 아니라 탄청을 피우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 시간에 뇌가 일할 수 있도록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즉 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려 해야 한다.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 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 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 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 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 CLC》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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