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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경직 목사 설교] 기독교 가정

기독일보

입력 May 20, 2019 06:14 A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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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경직 목사.

故 한경직 목사.

사도행전 16:31~34

이미 읽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간수에게 전도한 사실을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16장 3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간수에게 전도한 말씀의 내용이올시다. 그 다음에 34절에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더라" 그것은 전도한 결과입니다.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믿은 까닭으로 크게 기뻐하더라. 그와 그의 온 가정이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를 믿었으므로 큰 기쁨, 행복이 왔다고 여기에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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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개인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도 역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가정도 있는 것입니다. 나 개인만 구원 얻는 것은 부족합니다. 우리 온 가정이 다 구원을 얻어서 우리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민족적으로는 어린이날로 지키는 날이고, 세계적으로는 기독교 가정 주간으로 지키는 날인데, 가정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여러 가지 비참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비극의 대부분은 가정의 비극이올시다. 자살사건이든지 살인사건 같은 이와 같은 최대의 비극은 흔히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두어 가지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극도의 생활난이요, 또 하나는 죄악이 가정에 침입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부패하고, 가정에 불화가 오고, 가정에 파탄이 생기는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모든 가정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크게 염려되는 소년과 소녀 가운데 불량한 소년과 소녀들이 격증되는 것 같은데, 이런 문제들도 결국은 어디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가 하니 이와 같은 불행한 가정, 파탄된 가정, 이와 같은 가정이 그 원인이라고 우리가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해 볼 때에 이 가정문제는 중대합니다.

우선 우리 각 개인으로 생각해 볼 때에도 일생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행과 불행, 행복과 불행이 그 가정에 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는 국가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국가에 있어서는 우리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의 기초적 단위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이 건전하면 국가가 건전해지고, 우리 가정이 부패하면 국가도 역시 부패해집니다. 교회의 견지에서 생각할 때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가정은 우리 교회의 기초적 단위가 됩니다. 우리 교회에 속하는 가정이 진실하고 경건한 가정이 되면, 우리 교회가 그만큼 경건해집니다. 그러나 교회에 적은 두었지만 가정이 부패해지면 교회가 역시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고 우리 가정에서 우리 민족이 대대손손이 계승할 수 있는 귀한 자녀가 납니다. 자녀가 날 뿐더러, 이 귀한 자녀들이 우리 가정에서 자라납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의 가정의 분위기가 어떠한 분위기 가운데 있는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우리의 가정 분위기가 되는가, 못 되는가는 그 개인뿐 아니고, 가정뿐 아니고, 우리 민족 전체에 중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견지에서 볼 때나, 교회의 견지에서 볼 때나, 사회의 견지에서 볼 때나, 국가적 견지에서 볼 때나, 민족 장래의 견지에서 볼 때에 이 가정문제라고 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가만히 살펴보면, 재래의 가정, 옛날의 가정, 옛날의 유교의 도덕과 관습에 의지해서 이루어졌고 살림을 하던 옛 가정은 점점 와해되어서 무너지는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가만히 살펴보면,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나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나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나 모녀의 관계에 있어서나 이 모든 관계가 점점 변천되어 갑니다. 그런 까닭으로 혼란시대, 전환기를 우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옛날에 우리가 생각하던 가정이 무너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여기에 대치될 만한 새 가정을 우리가 발견해야 되겠는데, 그 새 가정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답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 가정입니다. 재래의 무너지는 이 가정 대신에 기독교 가정을 건설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기독교 가정이 무엇인가? 이런 점을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 기독교 가정은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로 더불어 우리 가정이 시작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청년 남녀가 결혼하기 위해서 배우자를 구할 때, 그의 건강도 보아야 되겠고, 학식도 보아야 되겠고, 가정 사정도 보아야 되겠고, 또 인물도 자연히 보아야 되겠고, 여러 가지 볼 것이 많습니다. 이런 모든 점을 충분하게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 것은, 이 모든 것 위에 내가 기독교 가정을 이루려고 한다면, 신앙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기 어렵습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독교 품성을 보아야 되겠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그이가 참된 신앙생활을 해서 그 신앙이 품격에 나타나느냐? 그리스도적 품격을 우리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믿지 않는 자와 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가정을 이루려고 할 것이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정을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배우자를 각 방면으로 잘 살펴서 선택한 후에 실상 결혼식장에 나오게 될 때에는 예수를 믿는 청년 남녀는 분명히 깨달을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결혼은 단순히 법적 계약이 아닙니다. 혼인신고를 하고 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는 사회적 계약이 아닙니다. 여러 보는 사람 앞에서 '예'라고 대답하고 안 하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은 기독교 결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분명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습니다. '내가 어떤 이를 택해서 약혼을 한 다음에 결혼을 하려고 할 때에 내가 그이와 결혼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경륜의 실현이다. 여기에 의심이 없다.'고 하는 확신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없으면 결혼식장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을 이룬다는 중대한 일에 하나님의 목적이 내 가정을 통해서 있을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어떤 상대자와 꼭 결혼을 하게 될 때에는 내가 그이와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장차 내 가정을 통해서 이룰 목적이 있다고 하는 철저한 확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확신이 없이 결혼식장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결혼식장에 임해서 하나님 앞에서 결혼하게 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양성의 육적, 영적 연합이 되는 것이며, 성신의 인봉(印封)이 있는 것인 까닭으로, 한 번 서약하고 결혼한 후에는 죽음 이외에는 나눌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실현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적, 육적으로 하나가 된 그 이후에 어떻게 한 몸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죽음 이외에는 나눌 수 없다고 하는 그 사실을 철저히 각오하고 결혼식에 임해야 될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의 생활을 가만히 보면, 처음에 몇 달, 또 어떤 가정에서는 몇 해까지 첫사랑에 도취되어 매우 재미있게 잘 지냅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가고 몇 해가 지나가다 보면 점점 환멸기가 오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니, 처음에는 첫사랑에 도취되어 다 몰랐더니, 그래서 신랑은 신부를 생각할 때에 '우리 아내야말로 천사이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 보니 정말 천사는 아니란 말입니다.

또 신부는 처음에 생각하기를 '우리 신랑이야 영웅이고 군자고 호걸이고 그저 이렇지.' 아,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몇 달 지나 보니 그렇지도 않단 말이에요. 피차에 단점도 알게 되고, 과거의 허물도 알게 되고, 혹 성질 변한 것도 알게 되고, 이렇게 될 때에는 환멸기가 오게 됩니다.

이 환멸기를 극복해서 피차에 서로 양해하고, 단점을 서로 알아주고, 피차에 단점을 서로 충고해서 고치면서 사랑 가운데서 장성해야 되겠는데, 이 장성을 이루려면 내가 이제 말한 세 가지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결혼은, 내 가정은 하나님의 섭리의 실현이요, 내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니까 이것을 이루어야 될 테야. 이 결혼은 죽음밖에는 나눌 수가 없는 사실이야.' 이러한 확신이 있으면, 피차간 어떤 단점을 발견하고 전에 생각지 못하던 어떤 무엇을 알게 된다 할지라도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참고 이겨서 극복해서 과연 마지막에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렇게 꼭 그리스도와 같이 가정을 시작한 다음에 또 기독교의 원리에 의지해서 가정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기독교 가정에는 기독교 가정 윤리가 있습니다. 기독교 가정의 도덕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볼 것이면, 여기에 분명이 말씀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에 비교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과 아내는 한 몸입니다. 여기에 통일과 평등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부부는 한 몸으로서 통일되었고 평등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평등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리스도에게 비교하고, 그것을 또 아내는 몸에 비교한 것은 자연의 질서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남편의 책임이 있고, 여자의 책임이 있고, 그 질서가 천연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는 남편으로 내고, 하나는 여자로 낸 데 천연적 질서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통일과 평등의 원리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자연의 질서를 가르쳐 주게 됩니다. 가정에 있어서의 남편과 아내의 의무는 자연히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경이 분명하게 남편을 향해서 권면하는 말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과 같이 꼭 네 몸과 같이 네 아내를 사랑하라"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참된 것과 같이 남편의 사랑이 참 되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남편의 사랑이 변함이 없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희생적인 사랑인 것과 같이 희생적인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또 그 반면에 아내에게 대해서 부탁하는 말은, 몸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머리의 지도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을 알 때에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나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나 자연적인 겁니다. 자연 가운데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정의 윤리와 도덕을 지켜야 우리가 기독교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정에 아이들이 나게 될 것이면 자연히 부모의 책임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부모의 책임이 있습니다. 주 안에서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자녀가 점점 자라나게 되면, 주 안에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부관계, 부부의 사이 또는 부자의 사이, 모녀의 사이에 다 기독교의 윤리를 좇을 때에 우리의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우리 가정이 한 교회와 같다고 할 것이면, 우리의 가정에 반드시 가정예배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교회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가정예배로 말할 것이면, 우리의 가정의 분위기를 거룩하게 만들고 화평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이 가정예배를, 우리가 우리 가정에서 예배를 볼 것이면, 가족이 다 믿음이 똑같지 않아서 어떤 가족의 믿음이 좀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그 부족한 믿음을 가정예배를 통해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우리가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항상 보면, 우리 자녀들에게 자연히 좋은 교육을 줄 수 있습니다. 찬송을 배워 가르쳐 주고, 기도를 배워 주고, 성경을 배워 주고, 좋은 모범을 우리가 자손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넷째는 우리 기독교 가정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기독교 가정의 표가 됩니다. 무엇으로 기독교 가정을 안 믿는 사람에게 나타냅니까? 먼저 찬송소리로 나타냅니다. 표가 됩니다.

또 넷째로는, 우리 기독교 가정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내 생활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지만, 그 사업의 수입이 많든지 적든지 혹은 십일조든지 십이조든지 그 가운데 얼마를 먼저 주의 사업을 위해서 바쳐야 되겠습니다. 또 가족 가운데 모든 가족들이 그 시간의 일부분을 주의 사업을 위해서, 전도 사업이나 자선 사업이나 교회의 무슨 일이나 하여간 주의 일을 하는 무엇이 있어야 우리의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바빠서 길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한두 마디로 말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가정이 시작되고, 그리스도의 윤리와 도덕으로 우리의 가정생활을 하고, 우리가 가정에서 항상 가정예배를 보고, 우리가 가정에서 주의 사업을 계속하는 가정이 된다고 할 것이면, 이 가정은 큰 축복을 받습니다.

첫째는 무슨 축복보다도 평화의 축복을 받습니다. 넓은 바다에 바람이 불어서 이리저리 밀리던 배가 항구에 들어오게 되면 그 항구에는 산이 빙 둘러있고 방파제가 있으니까 항구에 들어와서는 배가 조용히 머무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풍파가 높은 고해에서 살다가 여러 가지 세상에 부딪히다가 우리 가정에 들어오게 되면, 가정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쉬는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서도 부딪히다가 가정에 들어와서까지도 부딪히게 되면 그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가정은 기독교 가정만입니다.이런 평화로운 가정은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를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집이 크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런 가정을 이룹니다. 왜? 믿음 있는 가정에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는 줄 압니까? 죄가 있으므로 가정 풍파가 늘 일어납니다. 왜? 이런 가정에는 성신께서 임재해 계십니다. 성신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모든 열매가 우리 가정에 있을 때, 우리 가정은 평화로운 가정이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 가정에는 참된 사랑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음에 결혼할 때에 참 열렬히 서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볼 것이면, 청춘기의 사랑은 참 귀한 사랑은 사랑이지만, 거기에는 인간적 요소가 많이 끼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믿음 가운데서 그 사랑이 점점 무르녹아 가게 될 때에는 인간적인 요소는 점점 해소해 없어지고, 그 사랑이 변해서 부부의 사랑이 변해서 하나님 사랑과 같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젊었을 때 부부간에 있던 그 풋사랑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게 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나는, 범사에 참고, 범사에 믿고, 범사에 바라고, 범사에 잘 되고, 모든 일에 오래 참는, 참되고 무르녹은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이 어디에 있는가 하니, 기독교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런 가정에는 자녀의 축복도 있습니다. 시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처럼, 그런 가정 분위기에서는 아이들이 찌그러지거나 짜그러지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납니다. 자꾸 부부간에 싸움을 하면, 한 번 싸움하면 아이들의 얼굴을 여러분이 송곳으로 찌르는 줄 아시오. 그렇게 상합니다. 마음이 상해요. 평화로운 가정에서 좋은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잘 자라납니다. 혹 실상 육신의 아들이 없는 가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신령한 믿음의 아들들이 그런 가정을 통해서 잘 자라납니다.

시간 다 가서 더 말할 수 없는 게 유감이지만, 오늘 이 가정주간을 당해서 특별히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 온 가족이 아직까지 감화되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온 가족이 감화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또 둘째로는 우리가 우리 가정에서 꼭 예수를 우리의 주로 삼읍시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세요. 셋째로는 우리가 이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우리들에게 기독교 가정의 축복을 주시는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영락교회에 속하는 1,500여 세대가 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화평이 충만한 그리스도의 가정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자손들을 바로 기르고 우리 민족과 사회를 크게 봉사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크게 섬길 수 있는 귀한 기독교의 가정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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