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길 선교사
(Photo : ) 정운길 선교사(미주 실버선교회 대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시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어머니’인가 보다. 나에게도 어머니는 특별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시다. 어머니가 소천하신지 35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고 저며 오며 눈물이 솟아난다.

어머니는 태어나실 때 강원도 홍천에서도 가장 외진 서면, 그것도 면 소재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경기도와 산 능선 하나 사이에 있는 동막리에서 4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셨다. 외조부님은 비교적 생활에 여유가 있으셔서 오빠와 남동생은 남자라고 한학(漢學) 선생님을 집에 모셔놓고 한문을 가르치셨지만 이모와 어머니는 딸이라고 글방에 출입도 못하게 하셔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십리가 넘는 곳에 있는 도리소 소학교를 다니신 것이 교육의 전부이셨다.

그래도 다행히도 어머니는 머리가 명석하셔서 오빠와 동생이 배우는 천자문은 물론 명심보감까지 귀동냥으로 듣고 외우셨으며 다른 서책들을 읽어 한학에 유식하셨다. 글방 선생님이 어머니의 명석하심을 아시고 들어와 배우라고 해서 남동생이 공부하는 과정을 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사자성어도 잘 아시고 무슨 말이 나오면 어느 책 어느 편에 있는 말이라고 말씀하시며 내게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님도 연로하여 모든 하던 일을 큰 아들과 며느리에게 맡기고 건강하게 잘 지내셨다. 그런데 언젠가 서울 막내 아들집에 오셨는데 어디가 아프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의 병간호를 둘째 형수와 내 아내가 맡아서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병실을 떠나지 않고 정성을 기울였다.

문제는 이제 돌아가실 텐데 무엇보다 우선 영혼구원이 급선무였다.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시게 해드리는 것이 마지막 자식의 도리라는 생각으로 전도에 최선을 다했다.

“운길아! 어머니가 이상하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
전화로 들려오는 큰형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예, 알았습니다.. 작은형한테 연락하고 함께 내려갈게요.”
전화를 끊고 교감에게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것 같아 홍천에 가서 마지막 임종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린 교감이 “어서 가 보라.”고 한다.
어머니가 누우신 방에 들어가니 나를 나무라셨다.
“글 안 가르치고 왜 왔어?”
“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지요.”라고 대답을 하고서 형한테 “지금 같으면 돌아가실 것 같지 않네요.” 하니까 “아니야, 잠깐 정신이 드신 것뿐이야.” 하신다.
파출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작은형이 제대로 윗사람들에게 연락을 못하고 급히 왔다며 잠깐 서울에 나와 함께 올라가자고 해서 다시 서울로 갔다. 그야말로 글 가르치러 다시 학교에 들어갔더니 교감이 “아니 정 선생, 왜 왔어?” 하신다. / “예, 아직 돌아가실 것 같지 않고, 수업이 남아서요.”
“이 사람아! 어머님이 운명하셨다고 연락이 왔네.” 하신다. (계속)